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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게’는…

지난 2∼3월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드라마 ‘눈이 부시게’(사진)는 언뜻 뻔한 타임슬립 드라마 같았다. 25세 혜자(한지민 분)가 갑자기 70세 혜자(김혜자 분)가 된 후 겪게 되는 일들이 그려졌다. 풋풋한 20대 여성이 바라본 세상과 하루아침에 노파가 된 여성이 접하는 세상은 달랐다. 우리는 그 과정을 아주 천천히 겪게 되기 때문에 체감하지 못할 뿐, 같은 공간 안에서도 같은 인간관계 안에서도 20대, 70대 여성의 삶은 같을 수 없다. ‘눈이 부시게’는 이런 디테일을 사실감 있게 짚으며 공감을 샀다.

그러다 시청자들은 뒤통수를 맞았다. 12부작인 이 드라마의 10부에서 쉽게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이 벌어진다. 현실에 눈을 뜬 그는 고백한다. “저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습니다.”

20대 혜자가 70대로 시간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 70대 혜자가 자신의 과거인 20대 혜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치매 노인인 혜자는 읊조린다.

“긴 꿈을 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젊은 내가 늙은 꿈을 꾸는 건지, 늙은 내가 젊은 꿈을 꾸는 건지.”

‘눈이 부시게’는 사회적 질병이라 할 수 있는 치매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꿨다. 그동안 드라마 속 치매 환자는 주로 주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인물로 그려졌다. 치매 증상으로 인해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벌이고, 가족과 친구들은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화를 내면서도 슬퍼하고 가슴 아파한다. 이런 구도 속에도 치매 환자는 그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눈이 부시게’는 치매 환자의 행동이 아니라 그 내면에 집중한다. 우선 치매 환자의 관점에서 주변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치매 환자는 최근의 기억을 잃고 과거의 기억에 집착한다. 결국 그들이 만든 세상 속에서 그들의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셈이다.

이렇듯 ‘눈이 부시게’는 그런 치매 환자의 증상을 ‘병’이 아니라 ‘젊어지는 것’으로 바라봤다. 20대 기억이 남아 있는 70대 혜자가 20대 때 기억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다는 의미다.

이런 일련의 이야기는 김혜자라는 걸출한 배우와 만나 비로소 꽃을 피웠다. 김혜자는 20대와 70대를 오가는 감성을 능수능란하게 연기하며 10회에서 그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것을 밝힐 때까지 시청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는 데 성공했다. 이 드라마에서 김혜자의 극 중 이름 역시 ‘혜자’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노년의 배우 김혜자는 작품 속 배역과 혼연일체가 돼 그야말로 ‘눈이 부시게’ 연기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