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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과거 유형과 다른 지금 20대는
左右 이념 틀에서 자유롭지만
취업 절벽에 가장 가난한 세대

일자리 늘릴 노동·규제 개혁은
政·勞 기득권 커넥션에 막혀
빚까지 떠넘기는 비겁한 정치

이달 초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달라진 게 없다”며 눈물을 쏟은 34세 청년 대표의 심정은 언론의 추가 취재로 좀 상세해졌다. 왜 울었을까. 그는 청년 일자리로 국한하는 시각엔 반감을 보였다. 오랫동안 청년이 처해 있는 현실이 답답했고, 청년운동 하면서 부딪힌 장벽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청년세대가 사는 세상은 어른들이 살아온 세상과 매우 다르다”고 했다. 그게 청년 문제 논의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지금 20대는 과거 문법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세대다. ‘건국 이래 부모보다 못 사는 첫 세대’ ‘스펙이 단군 이래 최고인 세대’ 식의 썩 유쾌하지 않은 별칭이 따라붙는다. 이 두 가지는 부득불 일자리와 연관돼 있다. 취업 지옥에서 파생된 현상이어서다. 청년 실업은 고도 성장기가 끝난 후 지속돼 온 문제지만, 문 정부 들어선 뼛속으로 곪아가는 모습이다. 며칠 전 고용노동부는 청년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됐다며 일자리 정책 효과를 홍보했지만, 정작 청년 체감실업률이 역대 최악이라는 핵심 통계는 빼놓았다. 지난해 하반기에만 15∼29세의 제조업 일자리가 4만4000개 사라졌다. 이들 연령대가 가장 많이 취업한 분야는 음식·주점업이다. 나라에서 청년에게 제공한 일자리는 강의실 불 끄기, 휴지 줍기처럼 세금으로 만든 단기 알바 일색이다. 청년 당원 1만여 명을 뒀다는 미래당은 이를 두고 “한 번 쓰고 버리는 최악의 일회용 일자리”라고 했다.

문 정부의 친(親)노동 정책은 청년들에겐 오히려 독이 됐다. 최저임금 과속으로 괜찮은 알바 자리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근무시간마저 줄어 한 달 수입은 외려 떨어졌다. 공기업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벌어진 고용 세습, 채용비리는 청년의 지원 기회마저 빼앗으며 “이게 공정이고, 정의인가”라는 분노를 불렀다. 청년들의 취업 현장에는 좌절과 모멸, 배신감이 뒤섞여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문 대통령 취임 직후 87%까지 치솟던 20대 남성 지지율은 지난달 30%대로 꺾였다. 여당 중진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20대의 보수화 탓으로 돌렸지만, 그런 인식 자체가 청년들이 등 돌린 원인이기도 하다. 지금 청년 세대의 또 다른 특징이 탈(脫)이념이다. 특정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대신, 직관적·실용적으로 좋고 싫음을 나눈다. 문 정부의 권력 중추가 된 586세대도 청년들에게는 1980년대 틀에 고정된 ‘진보 꼰대’일 뿐이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와 내로남불 처신을 지켜보며 그런 시각은 더욱 굳어졌을 것이다.

사실 청년 고용을 늘리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고용 경직성을 깨 노동시장 진입의 길을 터주고, 기업 투자를 유도해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노동개혁이 필요한데, 문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달리 말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한다. 기득권 노조의 이해에 반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권과 노동계의 양 권력, 586과 민노총은 민주화 경험과 이념을 공유한 동지다. 이들은 투자를 이끌 규제 개혁도 재벌을 위한 것이란 논리로 발목을 잡는다. 투자 계획이 무산되거나 해외에 공장을 지으면 번듯한 일자리도 함께 없어지는 것이다. 새로운 고용을 창출할 신산업 역시 이념형 규제와 기득권에 꽉 막혀 있다. 시대착오적인 진보 기득권 커넥션이 청년의 취업 장벽을 더 높이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도 모를 리 없다.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이 일터에서 능력을 한껏 펼치는 나라에 희망이 있다. 세계는 지금 4차 산업혁명을 이끌 미래 인재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미·중은 국운을 건 첨단 기술 전쟁을 벌이고, 일본은 인공지능(AI) 25만 양병 계획을 세웠다. 한국에선 높은 학력을 지닌 멀쩡한 청년들에게 허드렛일이나 맡기고, 현금을 준다며 줄을 세우는 일을 예사로 벌이고 있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로머 뉴욕대 교수는 지난달 방한해 “아무것도 배울 게 없는 공공일자리는 인적자본을 파괴한다”고 우려했다. 지금 20대는 본의와 무관하게 가장 많은 빚을 떠안게 될 세대이기도 하다. 세금 주도 성장에 집착한 문 정부는 24일에도 3조6000억 원 국채를 발행하는 추경안을 내놓았다. 기초연금 인상, 문재인 케어, 공무원 증원 등 미래 세대가 부담할 부채 리스트는 끝없이 쌓인다. 나라의 미래를 걸머질 청년을 다독이긴커녕 오히려 희생양으로 삼는 정치는 무책임하고, 비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