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예스 24가 지난 20년간 책 구매 데이터를 종합해 우리 독자들의 독서 취향을 살펴보니, 여러 분야 중에서 문학을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소설입니다. 문학책이 연도별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은 11회로 가장 많았고, 그중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2003),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2009),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2014) 등이 포함됐습니다. 또 베스트셀러 20위 리스트에 가장 많이 등장한 작가는 ‘해리포터’의 J K 롤링이었고, 뒤이어 무라카미 하루키, 조정래, 공지영이었습니다.

영상과 소셜 미디어, 여기에 새로운 플랫폼이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책이 위기라고 하지만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과 욕구는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야기가 꼭 책을 통해 구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와 서사의 세계에서 책의 자리는 여전히 공고합니다. 오히려 매체가 다양해질수록 한 작가가 펼쳐내는 위대한 세계에 대한 믿음은 더 깊어집니다. 거대 자본이 투입되고 엄청난 인력들이 참여하면 더 좋은 이야기가 나오리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자본과 인력이 더 많이 투입될수록 오히려 더 상업화에 최적화된 이야기로 수렴·평준화하는 결과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이제 곧 엄청난 데이터를 축적한 인공지능(AI) 작가의 등장까지 예고되고 있으니 어쩌면 한 세계를 끝까지 펼쳐내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이제까지 없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위대한 한 명의 작가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최근 올해 퓰리처상을 받은 ‘오버 스토리’(은행나무)도 그런 소설입니다. 한 작가가 만들어낸 위대하고도 방대한 세계 말입니다. 비극적인 운명의 밤나무 사진 100년치를 물려받은 화가, 이민자 아버지로부터 뜻 모를 족자와 나무가 세공된 반지를 물려받은 엔지니어 딸, 격추당해 반얀 나무 위로 떨어져 살아남은 공군, 감전돼 죽었다가 공기와 빛의 존재에 의해 되살아난 파티광 대학생, 나무에서 떨어져 반신불수가 됐지만 컴퓨터 세계 속에서 더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학생. 제각각의 삶을 살지만 하나같이 나무와 얽힌 아홉 명이 예기치 못한 순간 서로 연결돼 원시림을 구하기 위해 모이게 됩니다.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들이 모여 거대한 숲을 이루듯,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모여 만드는 거대한 이야기 숲입니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나무와 마찬가지로 가지를 뻗어 나가고 잎을 드리우는 독창적인 서사구조가 인간의 경이와 유기성을 환기시킨다.” 퓰리처상 수상 평입니다. 이번 주말, 한 위대한 작가가 펼쳐내는 광대한 세계에 참여해 보시겠습니까. 704쪽, 1만8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