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쓰러지는 첨탑 15일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고딕 양식을 상징하는 96m 높이의 첨탑이 화염에 휩싸인 채 무너져내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 슬픔에 빠진 프랑스

5000개 참나무로 만든 지붕
첨탑 등과 함께 대부분 불타

당국 밤새 진화… 전소 면해
상징물 ‘두개의 탑’ 은 무사

“전쟁 폭격에도 살아남았는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슬프다”

“아베 마리아(Ave Maria·성모 마리아여)….”

15일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발생 직후 파리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대성당 인근 다리 등으로 모여 성가 ‘아베 마리아’를 합창하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의 간절한 기도는 파리의 밤하늘마저 붉게 물들인 대성당의 불길 속으로 퍼져 나갔다. 파리에서 25년을 살아왔다는 스테판 시뉴리(52)는 AFP통신에 “노트르담은 모든 전쟁, 폭격에도 살아남았었다. 불탈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슬프고, 공허하다”고 말했다. 노트르담 대성당 대변인 역시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며 탄식했다.

이날 르몽드와 AP통신 등에 따르면 파리 구도심 센 강변의 시테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는 지붕 첨탑 부분에서 오후 6시 50분쯤 연기와 함께 불길이 치솟으면서 발생했다. 1시간 17분이 지난 8시 7분 850여 년 전 장인들이 5000여 개의 참나무와 납으로 공들여 만들었던 지붕의 3분의 2가 “와르르” 소리를 내면서 무너져 내렸다. 붕괴한 첨탑이 있던 자리에는 불길로 마치 용암이 끓는 듯한 붉은 구멍만이 남았다. 대성당 내에도 소화기가 비치돼 있지만 목재로 된 내부장식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면서 불길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졌다.

첨탑이 무너졌을 때는 파리 도심 전역에서 노트르담 대성당 위로 치솟는 짙은 연기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경찰은 즉각 대성당 주변의 관광객과 시민들을 대피시켰고, 소방대가 출동해 진화작업을 벌였지만 4시간 넘게 불은 계속됐다.

12세기에 건축된 건물인 만큼 내부 장식품 대부분이 나무로 돼 있어 피해가 컸다. 첨탑을 비롯한 노트르담 대성당은 18세기 프랑스 혁명 때 심하게 파손돼 19세기 복원된 뒤 현재까지 유지돼 오며 손상이 발생해 600만 유로(약 77억 원)를 들여 20년 동안의 개·보수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남쪽 정면에서 두 블록 거리의 5층 발코니에서 화재를 지켜본 자섹 폴토라크는 로이터통신에 “지붕 전체가 사라졌다. 희망이 없을 정도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성당 내부에는 많은 예술작품이 있다. 정말 큰 비극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500여 명의 소방관을 투입해 진화작업을 벌였다. 건물 붕괴 위험 때문에 공중에서 많은 양의 물을 뿌릴 수도 없어 작업에 난항을 겪었다.

소방 당국은 새벽 2시쯤 “불길이 북쪽 타워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화재 발생 8시간이 지난 16일 새벽 3시쯤에는 불길이 거의 잡혔고 잔불 진화에 들어갔다. 성당 본관은 거의 소실됐지만 노트르담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남쪽 타워와 북쪽 타워는 화마를 간신히 피했다.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 1명이 다친 것 외에는 커다란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트르담 드 파리 대성당 = 1163년 첫 삽을 떠 1345년 완공된 성당으로 지금도 로마가톨릭교회의 파리 대주교좌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노트르담이라는 명칭은 프랑스어로 ‘우리의 여인’ 즉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프랑스 고딕 건축의 정수로 세계 건축사상 최초로 ‘벽날개’가 사용된 건축물로 유명하다. 혁명 이전까지 가톨릭 국가 프랑스의 정신적 지주인 동시에 정치 중심이었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5세, 메리 여왕 등 영국과 프랑스 왕가의 결혼식이 열렸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대관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잔 다르크 처형에 대한 재심 재판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