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오용길 화백의 ‘봄의 기운-산동’(94×170㎝, 화선지에 먹과 채색). 노란 산수유꽃이 만개한 전남 구례의 산수유 마을을 화폭에 표현한 작품이다. 청작화랑 제공

- 수묵풍경화가 오용길 ‘봄꽃’ 展… 9일까지 청작화랑

전통 수묵화에 현대성 가미
구례 산수유마을·주왕산 등
명승지 돌며 그린 20점 선봬

정선의 진경산수화 맥 이어
청와대 ‘인왕산도’로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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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려도 화랑가에는 봄꽃이 만개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청작화랑을 찾으면 노랗게 물든 산수유·개나리와 흐드러진 벚꽃 나무들 한가운데서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온 봄을 만끽할 수 있다.

청작화랑은 9일까지 ‘봄꽃’의 화가로 유명한 오용길(사진) 화백의 수묵풍경화 2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를 연다.

난해한 현대미술이 득세를 하고 있는 화단에서 그의 수묵담채로 그린 자연실경은 마치 오랜만에 찾은 고향마을 풍경에 매혹당하듯 미술애호가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갤러리에서는 샛노란 산수유가 지천인 구례 산수유마을부터 서울 수성동 계곡과 안산 기슭, 충북 단양 사인암, 경북 청송 주왕산 등의 상큼한 봄기운이 방문객을 맞는다. 작품 중에는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 안동 만휴정의 풍경을 다른 각도로 재현한 그림도 섞여 있어 눈길을 끈다. 작품제목도 모두 ‘봄의 기운’이다. ‘15호부터 20호에 이르기까지 크지 않은 그림들이지만 그래서 더욱 정감있게 다가온다.

오 화백은 1990년대부터 한국화가 서양화에 밀려 침체를 겪고 있는 와중에도 지필묵을 근간으로 한 한국화의 전통을 지켜 왔다.

“요즘 많은 이가 추상을 말하지만 포스트 모던 이후로 추상도 한물갔습니다. 요즘은 오히려 개념 미술이나 미디어 예술 등이 대세입니다. 그러나 화단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건 마지막 보루는 평면화입니다. 그리고 벽에 걸어 넣고 보면 좋은 그림은 풍경들을 그린 구상화죠.”

오 화백의 작품은 특히 ‘서양화 같은 산수화’로 유명하다. 우리 전통 수묵화에 현대성을 가미했다는 의미다. “제 그림은 전통적인 수묵 산수화가 아니고 지필묵채로 이룩된 풍경화입니다.”

그러나 화폭 속에 흐드러지게 핀 산수화와 벚꽃 무리를 보고 있으면 그 작품은 자연의 단순 재현이 아니라 주관적인 해석이 가미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더 푸근한 고향의 인정이 전해져 오는 듯하다.

“자연 풍경 속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어와 사색하면서 머릿속에서 풍경을 되살려보죠. 지저분한 것을 빼고 허전한 부분은 보충해 조화된 자연을 담습니다. 자연에서 동기만 얻고 화면에 잘 정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대답이다. 겸재는 직접 본 대상을 마음에 담은 후 붓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꽃그림이 많은 이유도 궁금했다. 그의 대답은 싱그러운 봄바람처럼 간단명료했다. “제가 행복한 사람이어서인지 그냥 섬세한 꽃그림이 좋아요.”

오 화백은 1973년 소시장 그림으로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은 후 주로 황토색 짙은 인물과 동물을 그렸다. 봄 풍경은 1980년대부터 그리기 시작했으며 이화여대 동양화과 교수로 부임한 후에는 한국 산수화의 현대화에 주력했다. 2012년 이화여대에서 정년퇴임 했고 현재는 서울 예술의전당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작품 중 명작으로 꼽히는 ‘서울-인왕산’(2005)의 경우 가로 4m에 이르는 대작으로, 올해 초 청와대 본관 로비에 설치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