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있는 결정 기대’ 논란

“구속하면 불균형한 판단”
사실상 가이드라인 준 셈
‘내가하면 체크리스트’ 냉소

정부 여당의 ‘법원 흔들기’가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1심 선고 이후 여당발 재판 불복 움직임이 거셌던 데 이어, 25일 현 정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심사가 열리기도 전에 청와대 차원에서 재판 압박에 나서고 있다. 법원 안팎에서는 “내로남불이 아니라 ‘내첵남블(내가 하면 체크리스트, 남이 하면 블랙리스트)’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날 “청와대의 입장 표명은 ‘법원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균형 잃은 구속으로 비칠 것’이라는 압박과 함께 판단 가이드라인을 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주진우)는 지난 22일 김 전 장관의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장 블랙리스트 작성·실행 혐의(직권남용)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진 직후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출입기자들에게 “장관의 인사권과 감찰권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법원의 판단을 지켜보겠습니다. 과거 정부의 사례와 비교해 균형 있는 결정이 내려지리라 기대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청와대와 여당은 의혹 초기부터 “환경부 문건은 불법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합법적 체크리스트”라며 “과거 정부의 블랙리스트와 이번 환경부 사례는 다르다”고 말하는 등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듯한 행위를 해왔다.

검사 출신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정부들의 나쁜 관행을 적폐로 몰아 형사처벌을 하게 했다면 현 정부는 당연히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어야 했는데, 적폐수사와 재판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 정부에서 임명된 사람들을 내쫓고 무자비한 낙하산을 내려보냈다”면서 “이게 들통나자 체크리스트라고 우기더니 급기야 사법부까지 협박하며 사실상 영장 기각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검찰 명운을 거는 수사는 공소시효가 이미 지나버렸는지 걱정하며 떠밀려 하는 (과거) 사건이 아니라, 이런 소위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사건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법학 전문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청와대가 사법부 재판 결과에 대해 저런 방식으로 언급하는 것은 삼권분립을 위배하고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와대가 검찰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와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제3자도 아니고 청와대 인사수석실이 수사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 대변인이 출입 기자들에게 해당 내용의 문자를 보내는 것은 자기 사건 재판에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보일 공산이 크고 재판의 공정성에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리안·김수민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