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판중심주의’의 부활

“검찰도 사법부인가요?”

검찰의 지위에 대해선 여러 견해가 있다. 수사기관이기도 했다가 준사법기관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유독 판사와 검사가 한편인 줄로 아는 국민이 많다. “검찰도 사법부”라는 오해가 진실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는 검사가 꾸민 조서를 일단 신뢰하거나, 검사가 청구한 영장을 기계적으로 발부해주는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한 판사가 많기 때문이다. 2006년 “검사 조서를 던져버려라”는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의 주문에 검찰뿐만 아니라 일선 판사들까지 반발했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법·검 유착관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당시 이 대법원장은 공판중심주의를 도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조서 프레임에 갇힌 판사들로 인해 그의 외침은 ‘바른 말’로만 자리 잡는 듯했다.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온 건 지난해 6월부터다. 바로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가 잠들어 있던 공판중심주의를 깨웠다. 지난 사법부 인사들은 사법행정의 모호한 경계선을 넘나들다 “과유불급”이란 비난을 받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내부 징계 사안에 검찰을 끌어들였다. 일련의 과정에서 사법부가 얻은 뜻밖의 성과는 판사들의 자기반성이다.

계기야 어떻든 실제 판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왔던 자신의 과거를 통렬히 반성하고 있다. 검찰 조사실에 다녀온 판사들의 ‘피압박 경험’이 구전으로 퍼졌다. 판사들은 난생처음 피의자나 피의자성 참고인이 돼 검사의 조사를 받으며 충격이 컸다. 한 판사는 “검사가 원하는 답변을 하지 않자 아무 질문도 않고 가만히 있다 한참 뒤에 똑같은 질문을 또 하고, 그래도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또 한참 앉혀 놓고 계속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다고 한다”며 “판사들한테도 이러는데 일반인들한테 어떻게 했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는 “사법부 수사를 계기로 판사들 내부에서 검사 조서를 불신하게 된 건 검찰 수사가 낳은 뜻하지 않은 성과”라고 말했다.

대법원 전산정보국 압수수색 이후에는 영장 발부에 ‘관계인이 참관하라’는 당연한 조건이 달리기도 했다. 최근 검찰과 법원의 틈새가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이렇게 판사들이 조서와 영장에 현미경 잣대를 들이대면서부터다. 아이러니하게도 판사들이 변하고 있는 지금이 검찰개혁의 적기다. 진정한 검찰개혁은 법원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일과 무관치 않다. 판사들의 반성을 철저히 이용해야 한다. 법원이 공판의 주재자로 거듭나면 검찰을 진정한 공익의 대변자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