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배우 설경구(사진 왼쪽) · 배우 류준열(오른쪽)

‘연기 9단’과 ‘연기 천재’가 만났다. 같은 소속사(씨제스엔터테인먼트)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배우 설경구와 류준열이 오는 20일 각각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과 ‘돈’(감독 박누리)으로 흥행 대결을 벌인다. 영화 ‘불한당’을 통해 다시금 전성기를 맞은 설경구, 그리고 ‘독전’과 ‘뺑반’ 등으로 최근 충무로에서 가장 두드러진 상승세를 보이는 류준열. 과연 누가 더 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을까.

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우상'의 한 장면.

설경구 “진이 빠지도록 집요하게 연기”

“‘불한당’서 폼잡기 배웠지만
‘박하사탕’진한 연기로 돌아가
배우로서 위치? 아직 멀었죠”

“진 빼면서 하고 싶었어요.”

설경구(사진)가 영화 ‘우상’을 선택한 이유다. 미스터리 스릴러인 이 영화는 도지사 유력 후보인 도의원 구명회(한석규)의 아들이 낸 교통사고로 지체장애 아들을 잃은 철물점 주인 유중식(설경구)이 사고 당일 사라진 며느리 최련화(천우희)의 행방을 찾는 이야기를 그렸다. 설경구는 감정의 바닥까지 긁어내는 개성 강한 연기로 영화의 묵직한 톤을 이끈다.

최근 ‘우상’ 시사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불한당:나쁜놈들의 세상’에서 어렵게 펴놨는데 다시 많이 구겨졌다”고 밝혔다. ‘펴놨다’는 건 ‘불한당’에서 은유형 연기를 보여주며 아이돌 못지 않은 팬덤(불한당원)을 모은 걸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다시 ‘구겨졌다’는 건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직설형 메시지를 전하는 연기로 돌아왔다는 걸까.

“‘불한당’을 통해 연기하며 폼도 좀 잡고, 계산도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방향을 돌려서 ‘박하사탕’ 같은 진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우상’ 시나리오를 읽고 강렬한 이야기에 빠져 멍한 느낌이 들었어요. 계속 펴진 채로 갈 수도 있지만 구겨지더라도 집요하게 연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죠.”

그러면서도 그는 과하게 보이는 것을 경계하며 대놓고 지르기보다는 뒤로 물러서는 느낌을 전하려 했다고 소개했다.

“성인이 됐지만 4∼5세 지능을 지닌 아들과 고립된 채로 살아가는 아버지를 그려내려 했어요. 아들의 지능과 생각에 맞춰져 있는 그런 아버지죠. 아들 시신을 확인한 후 주변 사람들의 멱살을 잡는 게 아니라 아이처럼 겁먹은 표정을 짓는 모습을 통해 너무 아픈 사랑에 빠져 몹쓸 병에 걸린 캐릭터를 표현하려 했어요.”

그는 “인물과 이야기가 촘촘하게 엮여 있어서 하나가 틀어지면 연결이 안 되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그의 말대로 영화는 각자의 안에 있는 우상에 사로잡혀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인물들의 심리묘사에 치중한다. 그러다 보니 다소 어렵게 다가온다.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영화 제목을 잊은 채 사건에 매달리지 말고, 각 인물이 처한 상황을 따라가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거예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세 인물 중 한 명을 선택해서 그 인물만 쫓아가세요. 그렇게 세 번을 본 후 마지막에 종합해서 한 번 더 보면 쉽고, 재미있게 느껴질 거예요. 어쩌다 보니 재관람을 부추기는 말을 하게 됐네요(웃음).”

그에게 “배우 설경구가 어디까지 와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지자 한참을 생각하더니 “글쎄요”라고 말하며 입을 열었다.

“아직 멀었죠. 어차피 100% 완성된 연기를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요. 배우는 단 한 번이라도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려고 집착하는 무모한 직업이죠. 조금씩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제가 지금 어느 위치까지 왔는지는 알 수가 없어요.”

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돈‘의 한장면.

류준열 “작품할때 찾게되는 배우가 꿈”

“돈이 꿈되면 안된단 메시지죠
‘전보다 좋아져’ 늘 듣고 싶어
‘금수저’ 캐릭터 도전하고파”

류준열(사진)에게 “어떤 욕심이 있냐”고 묻자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좋은 배우의 조건은 뭐라고 생각하나요”라고 재차 물었다. 눈을 아래로 향한 채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이내 말했다. “사람들이 계속 찾는 배우요. 누군가 영화를 찍을 때 ‘그 배우랑 하면 되겠다’ 싶은 배우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공동작업이니까요.”

나이에 비해 생각이 깊기로 정평이 난 류준열다운 대답이다. 이런 지론은 그가 영화 ‘돈’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주식 시장을 둘러싼 암투를 그린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돈’이다. 하지만 류준열은 이 영화 속에서 “돈 자체가 목표가 되면 안 된다”고 외친다.

“‘돈이 사람 위에 있다’는 말이 있는데, 결국 ‘돈=꿈’이 되면 안 돼요. 큰돈 앞에 누구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는 메시지가 마음에 와 닿았죠. 극 중 조일현은 마치 신입 사원과 같아요. 어른과 아이의 중간에 있죠. 그래서 저도, 관객도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에요. 특히 돈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인간관계의 변화를 디테일하게 짚은 점이 좋았어요.”

류준열은 요즘 충무로에서 가장 많은 시나리오를 받는 30대 배우, 가장 뜨거운 ‘젊은 피’다. 하지만 그는 무리하게 단독 주연작을 찾기보다는, 내로라하는 선배들 틈에서 내공을 다지며 ‘스타’보다는 ‘배우’로 성장해가고 있다. 2015년 데뷔 후 불과 4년 사이 비교할 수 없는 위상을 얻게 된 류준열에게 물었다. “열심히 연기해 번 돈은 어디에 썼습니까?”

“처음 번 돈은 여행하는 데 많이 썼어요. 예전에는 카드빚을 내면서 다녔죠. 여행에서 얻는 것이 정말 많거든요. 돈이 그 경험보다 중요하진 않아요. JTBC 예능 ‘트래블러’에 출연한 것도 같은 이유예요. 원래 꿈이 여행가였다는 PD님과 실제 프로 여행가인 작가님들과 맛집 소개보다는 여행에서 오는 소소한 즐거움과 의미를 만끽하고 시청자들께도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류준열에게도 고민은 있다. 그가 맡은 일련의 캐릭터와 작품은 류준열이 가진 불안과 콤플렉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가 가진 태생적 에너지를 작품 속에서 적극 활용하는 셈이다. 류준열의 대표작인 영화 ‘독전’ 속에서 주인공 락이 ‘나는 누군인가’라고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도 실제 류준열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또한 그를 찾는 곳이 많으니 노출도 많다. 이에 따른 이미지 소비 역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저 역시 고민이 되는 부분이에요. ‘금수저’ 캐릭터는 맡은 적이 없는데, 제가 가진 사고방식과는 다른 인물이니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다는 관심이 생겨요. 이미지 소비 역시 연기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통해 극복하려 항상 고민하지만, 아직은 그런 고민보다는 ‘제게 주어진 작품에 집중하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요. ‘전보다 나은데’ 혹은 ‘좋아지고 있다’는 얘기는 항상 듣고 싶어요.(웃음)”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