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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영원한 책사(策士)다.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방책을 구하는 역대 대권 후보들은 어김없이 김 전 대표를 찾았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 때 중용됐고, 2012년엔 박근혜 대선 후보의 ‘경제민주화 교사’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등 현대사에서 명멸한 수많은 대권 주자와 정치 지도자들이 그를 멘토로 옆에 두고 싶어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그는 세 명의 대통령을 만들어냈다. 2002년 대선 때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고, 2012년엔 박근혜 캠프의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으면서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어 일등공신이 됐다. 문 대통령과 구체적인 인연을 맺은 건 19대 국회의원 총선을 석 달 앞둔 2016년 1월 민주당에 영입되면서다. 당시 문 대통령은 김 전 대표 집을 몇 번이나 찾아가는 삼고초려 끝에 그의 영입에 성공했고, 김 전 대표는 그해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원내 1당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자신이 도왔던 역대 대통령들은 막판에 늘 김 전 대표를 실망시켰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약속을 마지막까지 지키지 못했고, 박 전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대선 후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문 대통령은 19대 총선 승리 이후 태도를 바꿨고 김 전 대표는 민주당 입당 1년 만에 탈당하고 국회의원직까지 버리며 그와 결별했다.

김 전 대표는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서강대에서 강의한 원조 ‘서강학파’ 출신이며 전두환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거쳐 노태우의 6·29선언 직후 국회 개헌특위 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았다. 그때 탄생한 것이 ‘김종인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경제민주화 조문(제119조 2항)이다. 그가 꼽는 인생의 스승은 조부(祖父)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다. 지난 1963년 스물셋 나이에 할아버지의 비서실장 역을 하면서 정치를 배웠다고 밝혔으니 정치에 입문한 지 56년이 되는 셈이다. 그는 경제 약자에 대한 배려가 이뤄지지 않으면 시장경제 시스템이 붕괴한다고 믿는다. 가인이 토지개혁을 공산화를 막는 보루로 여겼듯이 김 전 대표는 경제민주화가 자유시장경제를 지키는 길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허민 선임기자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