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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 문화부 부장

서울 남대문시장 그릇도매상가 앞의 손바닥만 한 건어물 가게 ‘동경상회’에서는 ‘딸기 말랭이’를 판다. 딸기 말랭이란 생딸기를 말려서 만든 먹거리.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요즘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기념 상품이다.

‘남대문 할아버지’(난다먼라오예예·南大門老)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동경상회 주인 장기수(80) 씨는 최근 중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스타로 떠올랐다. 중국의 인터넷검색엔진 ‘바이두(百度)’의 검색창에 장 씨 별명을 치면 검색되는 관련 게시물이 자그마치 10만7000개다.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의 명소가 외국인 관광객에 의해 발견되고, 전파되며 중국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동경상회의 주력 상품은 어포와 견과류. 말린 과일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동경상회는 오프라인 판매만 한다. 인터넷 주문도, 온라인 광고도 안 한다. 유명해지기 위해 장 씨가 한 일은 없다. 질 좋은 상품을 들이고, 손님을 친절하게 대했으며,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준 게 전부다. 그럼에도 다중(多衆)은 가게를 발굴했고, 동경상회의 어포와 말린 딸기가 SNS를 타고 중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한국의 전통시장 먹거리를 대표하는 이른바 ‘대박’ 히트상품이 됐다.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관광 히트상품은 딸기 말랭이 말고도 많다. ‘숙취 해소 젤리’가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적도 있고, 녹차 잼이 ‘한국에 가면 꼭 사야 할’ 쇼핑 목록의 맨 앞에 있었던 적도 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올 때 정부가 늘 강조한 얘기가 ‘고품질’이었다. 말인즉슨 ‘여행의 품질’이었지만, 정책 당국의 진짜 관심은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더 많은 돈을 쓰게 하는 것’이었으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품질’이 아니라 ‘고비용’을 추구했다. 비행기 좌석이 한정돼 있으니, 씀씀이가 큰 손님을 골라 받겠다는 심산이었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이런 정책은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사드 보복으로 여행사의 인솔로 한국을 찾는 단체관광이 중단되면서, 스스로 비행기 표를 사서 한국을 찾는 중국인 개별 관광객이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을 전후해 중국인의 관광 소비도 크게 줄었다. 뭉칫돈을 들고 와 면세점을 털다시피 하던 쇼핑 행태는 거의 사라졌다.

여행문화가 성숙하면 맹목적인 쇼핑을 하지 않는다. 관광객 쇼핑 지출 감소는 사드 보복이 없었더라도 언제고 닥쳤을 일이다. 대신 중국인 개별 관광객들은 한국에서 이색적인 먹거리나 실용적인 소비재 등을 찾고 있다. 쇼핑 위주의 관광이 문제라지만, 남대문시장을 찾아 딸기 말랭이를 사는 건 단순한 쇼핑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시장을 찾아 매력적인 관광 프로그램을 즐기는 체험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한국을 찾는 중국인 개별 관광객들이 SNS와 유튜브 등을 활용해가며 한국인도 잘 모르는 한국의 매력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있다. 이른바 ‘지속 가능한 여행’이란, 맹목적인 소비를 부추겨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이처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법이다. 잃은 게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우리 관광산업은 큰 타격을 받았지만, 한편으로 얻은 것도 적잖다.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