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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수의 글로벌 경제 이야기 - (28) 비관론 짙게 깔린 ‘2019 다보스포럼’

‘세계화 4.0’ 논의하는 자리에
트럼프·시진핑·메이 등 불참
주요국 정상중 메르켈만 참석

美中무역전쟁·EU난민문제 등
‘자국우선주의’가 세계화 압도
‘앱’사용 놓고도 G2 양분 조짐

IMF 등 경기둔화 경고 잇따라
자유주의가 완전해법 아니지만
자국주의도 대안이 될 수없어


#1.“낙관론은 별로 없다. 우리가 너무 비관적인가? 모르겠다. 그러나 올해는 비관론이 대세인 것 같다.” 20년 넘게 다보스포럼에 참가했다는 한 인사의 CNN 인터뷰다.

다보스는 스위스 동쪽 알프스에 위치한 인구 1만 명 남짓한 휴양지다.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가 사촌 요아힘이 있는 요양소에 문병을 가면서 시작된 토마스 만의 장편소설 ‘마(魔)의 山’의 무대인 이곳에서 매년 초 기업인, 정치 지도자, 학자, 언론인, 유명인사들이 모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을 개최한다.

올해 3000명의 초청 인사 가운데는 환경주의자 맷 데이먼도 있었다. 초청받은 사람들만 올 수 있지만 기업인들은 참가비 외에도 참여 범위에 따라 6만∼60만 스위스프랑의 회비를 더 내야 한다. 다보스포럼 참석자가 모두 같은 위상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 지도자나 고위 관료가 착용하는 홀로그램 스티커가 있는 배지, 공식 대표의 흰색 배지, 호텔 입장만 가능한 붉은 배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행사장 외곽에는 저격병이 경비를 설 정도로 삼엄하다.

세계화 4.0(Globalization 4.0)이 올해 다보스포럼의 주제다. 세계화 4.0은 2000년대 중국과 인도가 경제 강국으로 부상한 초세계화(Hyperglobalization) 이후를 말하며 미래의 세계화를 논의하자는 데 그 취지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화 4.0이 어떤 모습인지는 이번 포럼 행사가 제대로 보여줬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부 각료가 참석하지 않았다. 정부의 셧다운 때문이다(셧다운이 왜 일어났는지를 생각해보자). 경제가 내리막에 들어선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도 불참했다.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도 참석하지 않았다(브렉시트 때문이다. 브렉시트가 어떤 연유에서 결정됐는지 생각해보자).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노란 조끼 시위에 발목을 잡혔다. 한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대신할 유럽의 리더로 나섰지만 현재 개혁을 추진할 동력이 크게 위축됐다.


#2. 다보스포럼이 개최된 주,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슬로벌리제이션(Slowbalization)을 표제로 달았다. 세계화의 김이 빠지고 정체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정체된 세계화는 1995년 설립한 세계무역기구(WTO)의 현주소를 보면 확연하다. 2001년 시작된 도하(Doha) 라운드는 여전히 교착 상태이며 강대국 간 무역분쟁은 164개국이 준수해야 할 무역규범의 존재를 무색하게 한다.

세계화가 정체된 것은 무엇보다도 글로벌 경제를 이끄는 선진국이 세계화의 부작용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무역공세는 제조업 공동화를 초래, 러스트 벨트가 미국 내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산됐다. 고용 불안은 심각한 사회 경제적 문제를 야기했으며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는 4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김경수의 글로벌 경제 이야기 22 참조)

무역이 미국을 바꾼 것처럼 난민은 유럽을 바꿨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2016년 말 전 세계 난민을 254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근래 시리아, 아프간, 남수단 등 지역분쟁으로 난민이 급증했으며 아프리카 지역의 기후변화에도 요인이 있는 것으로 본다. 난민은 많아도 이들을 받아줄 선진국은 마땅치 않다. 유럽은 난민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14년 한 해만 해도 62.5만 명이 유럽연합(EU)에 망명을 신청했으나 지금까지 프랑스, 독일, 스웨덴, 영국은 73만 명이 안 되는 이들에 대해 난민 지위를 부여했을 뿐이다.

난민 공포는 유럽의 극우 정당이 약진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스웨덴·네덜란드·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에서는 제2당 연정에 참여했고, 이탈리아는 서유럽 최초로 극우 정권이 들어섰고, 슬로베니아에서는 제1당으로 부상했으며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은 재집권에 성공했다. 영국 국민은 EU 탈퇴를 지지했다.


#3. 다보스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인사는 한때 자유세계의 총리로 칭송을 받았으나 연이은 선거에서 극우파에 밀려 2년 뒤 정계 은퇴를 선언한 메르켈 독일 총리다. 메르켈 총리는 “오늘날 기존 국제질서의 타당성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는 새로운 접근론이 대두되고 있다. 먼저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나서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되는 질서를 세워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과연 옳은 길인지에 대해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자국 우선주의는 세계화와 양립할 수 없음을 경고한 것이다.

자국 우선주의가 세계화의 부작용을 치유할 수는 없다. 선진국 블루칼라 노동자의 고된 삶은 세계화보다는 자동화와 같은 기술 진보에 근본적인 요인이 있다. 기술 진보가 계속되는 한 미숙련 노동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국의 무역충격이 제조업에서 일하는 많은 미숙련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았다. 그러나 동시에 정보통신기술(ICT)과 같은 부문에서 전문직 고용이 다수 창출됐다. 결과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서 높은 부문으로 생산활동이 전환하면서 저임금 노동에 대한 수요가 고임금 노동에 대한 수요로 대체된 것이다.

더욱이 미·중 무역전쟁은 중국 경제를 곤경에 빠뜨린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여파가 글로벌 경제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구리 수요의 절반을 차지하며 최대 자동차시장이기도 하다. 구리 값은 작년 상반기를 지나면서 폭락세를 보이고 있고 자동차 산업은 침체, 세계 자동차 업계 구조 조정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대중 수출은 지난 10년간 두 배가 증가했으며 중국에서 번 돈은 다국적기업의 영업이익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애플, 캐터필러, 노스럽, 보잉 등 대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다국적 제조기업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2월에 이어 두 달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 수출도 반도체, 석유제품의 대중 수출이 크게 감소한 데 그 배경이 있다.

지난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중서부 팜 벨트(Farm belt) 지역에서 파산을 신청한 농가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캔자스에서 인디애나, 다코타에서 아칸소에 이르는 곡창지대가 농축산품을 수입하는 중국, 멕시코의 관세보복으로 러시아, 브라질에 밀려 불황을 맞은 것이다.

자국 우선주의는 글로벌 경제에 새로운 위험을 제기한다. 달러화 중심의 국제통화질서는 위기 시 안전자산인 달러화에 대한 수요를 촉발한다. 그러나 미국이 리처드 닉슨 대통령 당시 존 코널리 재무장관의 말처럼 ‘달러는 우리 통화지만 당신의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한다면 신흥국의 잦은 외환 불안은 불가피하고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질서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연방준비제도(Fed)는 선진국뿐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 한국, 멕시코, 싱가포르에도 통화스와프를 제공했다. 그러나 더 이상 연준에 글로벌 경제에 달러화 유동성을 공급하는 최종 대부자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다.


#4. 조지 소로스는 포럼에서 시진핑 주석을 겨냥해 “머신러닝과 인공지능이 억압적인 정권의 손에 들어갈 때 열린 사회가 처할 치명적인 위험에 주의를 환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기술을 국가안보에 연관 지우고자 하는 소로스의 주장에 많은 이가 공감한다.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제재는 미·중 무역분쟁이 단지 경제문제만은 아닐 것이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실제로 작년 가을 출간된 백악관 보고서는 군수품에서부터 전자제품에 이르는 미국의 군사 관련 산업이 중국 기업에 과다하게 의존함으로써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미·중 무역협상은 수지 불균형을 개선하고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는 등 중국으로부터 양보를 받아내는 수준에서 봉합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다. 미·중 대립은 장기화될 수 있는 것이다. 애플의 주요 공급업체 폭스콘은 베트남과 인도로 생산시설을 확장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화웨이도 비슷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본질적인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포럼에 참가한 기업인들은 결국 기술 관련 글로벌 공급사슬이 재편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웹 세상이 쪼개져 온라인 정보의 흐름과 전자상거래가 분열되는 스플린터넷(Splinternet)의 가능성이다. 인공지능과 5G 모바일은 빅데이터에 의존하지만 전자상거래와 국경 간 데이터 흐름을 관리하는 규칙, 즉 글로벌 거버넌스는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시작한 1997년 당시에서 별 진전이 없다. 데이터를 둘러싼 글로벌 거버넌스는 난제다. 미국은 느슨한 규제를 요구하는 기업을 대변하고, 중국은 빅데이터를 중앙에서 통제하기를 원하며, 유럽은 프라이버시를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작년 미국과 중국의 기술기업문화 차이와 상호작용을 기술하고 미래를 전망한 ‘AI 슈퍼파워스(AI Superpowers)’를 출간한 리 카이푸는 다보스에서 인터넷이 중국과 나머지가 아닌 중국과 중국 앱을 사용하는 나라와 미국과 미국 앱을 사용하는 나라로 쪼개질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인도,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일부에서 알리바바와 텐센트에 의해 주도되는 중국 앱이 압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5. 글로벌경제가 둔화되고 있다. 다보스포럼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중국 경제의 둔화가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이기는 하나 만약 하락세가 가속화된다면 큰 위험을 제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IMF는 지난 10월에 이어 금년 1월에도 하향 전망(2019년 3.5%)을 했으나 결코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금년 다보스포럼에서의 비관론을 경기예측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비관론을 단지 사람의 감정, 즉 야성적 충동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총요소생산성(TFP) 증가율은 통상 성장의 질적 지표이면서 동시에 지속 가능한 성장의 지표로도 여긴다. TFP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급속히 하락했으며 대침체기를 지나면서도 여전히 예전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는 히스테리시스(Hysteresis)가 일어나고 있다. 히스테리시스는 경제가 큰 충격을 받았을 때 복원력을 상실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는 현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유주의적 질서하에서 일어났다. 이 위기는 극복되지 못하고 깊은 상처를 남겼다.

글로벌 경제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국 우선주의는 그 당위성 여부를 떠나 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시도로 보인다. 다보스포럼의 비관론은 이 시도가 결코 올바른 대안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공유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문화일보 1월 16일자 27면 27 회 참조)

한국경제학회장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