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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산업정책 없다’ 질타한 이후
세부 어젠다 챙기는 文대통령
親기업·反기업 혼재된 메시지

경영권 흔들고 노조 편향 지속
‘정부 주도’ 집착은 시대착오
기업 뛰놀 환경 구축에 그쳐야

‘산업정책이 없다. 산업 생태계가 이대로 가다간 무너지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 업무보고에서 외부 의견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질타한 말이다. ‘뼈아픈 자성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비판엔 한사코 귀를 닫던 문 대통령의 다른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이를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새만금 태양광, 스마트공장, 수소경제 등을 띄우는 한편으로 기업인과 스킨십도 부쩍 늘리고 있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문 대통령에게 최소 2, 3개 산업에 대해선 문재인 정부에서 만든 것이란 평가를 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문 정부표 산업정책’이란 말도 생겨났다. 문 대통령이 탐독했다는 ‘축적의 길’ 저자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를 경제과학특별보좌관으로 임명한 것도 눈에 띈다. 산업정책을 청와대가 직접 챙기는 모양새다.

문 정부 3년 차에 접어든 지금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다. 성장률은 물론, 생산·투자·수출 모두 내리막이다. 성장 엔진에 불을 지필 산업정책의 전환은 시급하다. 조선 ‘빅2’ 체제, 광주형 일자리, 규제 샌드박스 등 가시적인 성과도 일부 나왔다. 그러나 정작 산업정책의 파트너인 기업은 시큰둥하다. 어디로 가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산업정책은 기업이 기술력과 창의력, 도전정신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이끄는 것이다. 그래서 친기업을 지향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문 정부 정책은 친기업과 반기업 깜빡이를 동시에 켠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친기업 메시지를 보내는 와중에 단호한 어조로 ‘스튜어드십 코드 적극 행사’와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을 공언했다. 있는 규제를 없애도 모자랄 판에 경영권을 흔들 신(新)규제를 덧붙이면 본업에 전념할 수 없다.

노조 편향 정책도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막는 족쇄다. 국내 산업현장의 고비용·저생산성 구조는 노조권력의 득세로 생겨났다. 경쟁국들이 노동개혁으로 체질을 바꾸는 동안, 문 정부는 친노조 정책으로 기업을 더 궁지로 몰았다. 주 52시간제를 강행해놓고, 탄력근로제 확대 보완책마저 민노총에 끌려만 간다. 침체에 빠진 주력 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노조 반대를 의식해 손을 놓았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통합도 노조의 벽을 넘어야 한다. 광주형 일자리 역시 고비용 구조와 전투적 노조의 공세를 견뎌낼지 의문이다.

‘문재인 산업정책’은 곧 혁신성장의 수단이고, 제조업 부흥과 신산업 육성이 핵심 전략이다. 미국이나 중국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이지만, 방법론은 거꾸로다. 미국 기업들이 본국에 속속 복귀한 것은 파격 감세와 투자 지원책을 병행한 결과다. 중국이 혁신의 대명사로 변모한 것도 일단 해보라는 식으로 규제를 없앤 덕이다. 문 정부는 글로벌 흐름과 반대로 법인세를 인상하고, 인건비를 올리는 정책을 쏟아냈다. 동남아·아프리카에도 보급된 카풀 하나 해결 못 하는 정부다. 그러니 되돌아오긴커녕 기업도, 두뇌도, 자본도 해외로 줄지어 망명하는 현실이다. 잠재력을 발휘할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혁신성장은 말잔치로 끝날 뿐이다.

혁신은 어느 날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오래된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아이폰 등장의 배경엔 스티브 잡스의 천재성 외에 수십 년에 걸친 미국 정부의 과학기술 투자가 있었다. 장기 투자를 견딜 ‘인내 자본’의 역할을 정부가 해줘야 한다. 국내에도 원자력산업이 그런 축적 과정을 거쳐 세계 최고가 됐지만, 문 정부는 오히려 허물기에 여념이 없다. 산업정책을 정부가 세부적으로 짜고 이끌어간다는 발상부터가 4차 산업혁명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문 정부는 3개 기반경제, 8대 선도사업 등 관제 용어를 만들어내곤 재정을 대거 투입할 계획이다. 문제는 산업의 주역인 기업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렇게 분류됐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문 정부표 산업정책은 임기가 끝난 뒤엔 이전 정권이 그랬듯 대상이 바뀌고 주안점도 달라질 것이다. 이정동 특보는 저서에서 “신성장동력을 찾고 자원을 집중 동원하다 또 다른 신성장동력으로 옮기는 방식은 축적을 오히려 저해한다”고 짚었다.

경쟁에 노출된 기업의 시장 감각을 넘어설 정부는 없다. 산업정책은 기업이 마음껏 뛰놀도록 걸림돌을 치워주는 등 지원 인프라 구축으로 족하다. 정부 의도에 맞춰 민간 기업을 줄 세우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