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태호 외교부 2차관

지난 1월 15일 국무총리가 주재한 제32차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 ‘국제개발협력 분야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 기본정책’이 채택됐다.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시민사회가 독립적인 주체이자 정부와 동등한 협력 파트너라는 점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일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걸맞은 움직임이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개발협력을 더 효과적이고 더 사람 중심으로 추진하는 데 큰 동력을 얻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국제개발협력 활동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크다. 우리 정부의 무상원조 최대 시행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올해 예산이 약 7240억 원인데, 국내 140여 시민사회단체가 전 세계 90여 나라에서 펼치고 있는 개발협력 활동이 5000억 원 규모에 이른다. 이를 뒷받침하는 국내 개인 정기 후원자가 300만 명이 넘는다.

국제개발협력은 개도국의 가난하고 고단한 개인의 삶을 개선하자는 데 근본 취지가 있다. 현실의 어려움에 좌절하지 말라는 메시지와 함께 더 나은 삶을 향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경제발전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민주주의 증진이 병행돼야 한다. 개발협력의 이런 취지를 가장 잘 살릴 방안이 시민사회와 협력이다. 시민사회는 실제 개발협력 현장에서 개도국 국민과 함께 호흡하면서 그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현실적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채택된 ‘국제개발협력 파트너십 기본정책’은 정부가 시민사회단체들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고심하고 치열한 토론을 거쳐 만들어낸 정책 문서다. 목차 구성에서부터 한 문장, 한 단어를 다듬는 작업을 함께했다. 이 정책 문서는 시민사회가 개발협력의 독립적인 주체로서 정부와는 다른 고유한 역할을 한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상호 신뢰와 존중, 상호 보완성, 독립성과 자율성 존중, 상호 학습, 현지 환경 존중이 이러한 파트너십의 기본 원칙이다. 정부와 시민사회는 국제개발협력을 통해 ‘개도국의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인도주의 실현을 도모’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앞으로의 과제는, 정부와 시민사회가 이 기본정책을 함께 이행함으로써 ‘함께하는 개발협력’을 이뤄나가는 것이다. 우선, 우리 개발협력 정책 수립과 사업 개발에 대해 시민사회와 머리를 맞대려 한다. 우리 정부와 시민사회는 정례 협의를 통해 우리 개발협력 추진 과정과 그 결과가 개도국에 실질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개발협력이 더욱 효과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다. 우리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현지 사정을 더욱 잘 알고 있는 개도국 시민사회와도 협력해 나갈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우리 개발협력의 핵심 지역인 아세안과 인도 등을 대상으로 한 신(新) 남방정책을 추진하는 데도 사람(People)을 맨 앞에 둔 사람 중심의 평화(Peace)와 상생 번영(Prosperity)의 공동체를 강조하고 있다. 평화와 상생 번영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개발협력 정책도 사람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람 중심의 정책으로 거듭나야 한다. 정부는 시민사회와의 협력에서 이 정책을 구현할 해법을 찾으려 한다.

이번 ‘국제개발협력 파트너십 기본정책’ 채택은 사람 중심의 개발협력을 만들어 가는 데 우리 국민이 더욱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민의 활발한 참여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인도주의’를 국제사회에 실현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