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기업패싱’ 우려 커져

“피드백 없는 정부에 피로감
‘부정적 인식’ 바뀐 게 없다”

정부가 기업 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기업 의견을 듣기만 하고 정책에 하나도 반영하지 않는 신종 ‘기업 패싱’ 현상에 대한 재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듣는 척’ 정치가 기업인들의 의견 개진 피로감을 높이고 있다는 말들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25일 “청와대가 기업을 청와대로 불러 의견을 듣고 사진도 찍는데, 막상 원안대로 가는 정부 정책을 보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듣기는 하는데도 피드백이 전혀 없는 정책에 피로한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기업인은 “청와대의 기업인들에 대한 인식이 하나도 안 변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시행령 개정을 통해 최저임금 적용 대상 시간에 주휴시간(유급휴일)을 포함하도록 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까지 재계는 대법원의 판례에 따라 월 최대 174시간인 소정근로시간으로만 임금을 나눠 시급을 산출해 왔다. 그러다 지난해 8월 정부가 “최저임금법 취지대로 돈을 받은 휴일 시간을 근로시간에 합산해 시급을 산출해야 한다”며 주휴시간을 근로시간에 포함해 최저임금을 산정하도록 입법 예고했다.

당시 재계는 같은 월급을 주고도 최저임금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며 크게 반발했다. 경제 단체도 공식적으로 나섰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업의 어려운 경영 현실과 절박성은 반영되지 못했고 기업의 경영 재원과 권리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한 추가적인 임금 인상으로 인해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가 확대될 것이 우려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의견은 결과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더해 저성과자 해고와 임금·근로시간 등의 취업규칙 변경을 쉽게 하도록 한 ‘양대(兩大) 노동지침’을 폐기하는 과정에서 재계에 대한 별다른 의견 수렴 절차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정부는 지난해 7월에는 재계·소상공인 입장을 대변하는 사용자 위원이 불참한 가운데, 2019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하기도 했다. 더불어 주 52시간 근무제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지침) 도입 때도 재계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전날 대기업에 대한 경고를 한 뒤, 하루 뒤에 ‘친기업’ 뉘앙스의 발언을 하는 대통령의 발언에 기업들은 당황스러울 것”이라며 “이는 기업에 대한 진심이나 경제철학이 부재해 생기는 문제로, 기업인들의 의견을 반영한 일관된 경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