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공정경제’ 회의 성윤모(왼쪽 첫 번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윤종원(〃 두 번째) 청와대 경제수석이 23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공정경제 추진전략 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대기업, CVC 계열사로 못 둬
해외 스타트업으로 돈 몰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은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인 ‘GE벤처스’를 통해 2013년 이후 100개 이상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의 지분을 사들였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벤처투자 자회사 ‘구글 벤처스’는 지난해 공유 경제를 공간으로 확대하기 위해 행사공간 예약서비스업체 ‘피어스페이스’에 약 180억 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같은 투자가 불가능하다.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의 분리)’ 규제 탓에 대규모 자본을 가진 대기업들이 CVC를 계열사로 둘 수 없어서다.

전 세계 벤처 생태계에서는 인수·합병(M&A)을 앞세워 새로운 산업과 신성장 동력을 만들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거미줄 규제’가 벤처투자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금산분리나 계열사 간 부당거래, 일감 몰아주기 등 각종 규제가 대기업의 벤처 M&A나 투자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벤처업계에서 대표적인 투자 족쇄로는 CVC 규제가 꼽힌다. 지난해 8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벤처 지주사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CVC는 허용되지 않았다. CVC는 기업집단 내에 설립되는 벤처캐피털이다.

재계는 CVC를 단순히 금융업으로 보지 않고, 기업의 혁신 수단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공정위는 금산분리 원칙을 내세워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CVC가 벤처 M&A 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하고 있다. 구글과 애플, 인텔, 등 글로벌 기업들은 CVC를 통해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한 뒤 인력을 채용하거나 기술을 가져와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한다. 대기업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투자→ 성장→ 기업공개나 M&A 등을 통한 회수→ 재투자’의 선순환 구조로 벤처 생태계를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다.

재계는 규제가 고수된다면 국내 대기업의 자금이 해외로 쏠리는 현상이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일부 대기업계열 CVC는 해외 스타트업 투자에 집중하면서 미래먹거리를 모색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대기업들이 산업의 급변기에 사활을 걸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며 “대기업 투자 족쇄가 안 풀리면 벤처업계 돈 가뭄은 해소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