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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용 경제산업부 차장

“경제 실패 프레임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1일 밝힌 ‘소비 지표 호전 발언’은 또 다른 통계 오독(誤讀) 사례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다”(5월),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됐다”(8월), “(조선·자동차 경기가 호전됐으니)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11월) 등에 이어 벌써 네 번째다. 문 대통령은 ‘언론이 의도적으로 정부의 경제 성과를 보도하지 않고 있다’는 투로 “올해(2018년) 소비 지표가 좋다”고 반박했다. 문 대통령이 믿는 구석은 지난해 민간소비 증가율이 2.7%가 될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분석 자료로 보인다. 하지만 그야말로 숫자를 어느 시점에서 어느 방향으로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통계의 착시다. 민간 소비 증가율은 1분기 3.5%, 2분기 2.8%, 3분기 2.5%로 계속 하향 곡선이다. 이는 모두 전년 대비다. 즉, 지난해 성적이 좋지 않다면 올해는 조금만 나아져도 개선 효과로 보이는 것이다. 그 전년도인 2017년 1분기는 경기가 바닥까지 추락했던 대통령 탄핵 국면이었다. 2017년 말부터 일자리 예산으로만 최소 54조 원을 투입했는데도 이 정도라면 부끄러움을 느낄 만하다. 소매판매액 역시 3월 2.9%에서 9월엔 -2.0%까지 떨어졌다가 11월엔 0.5%로 간신히 마이너스를 면했다. 한국은행의 또 다른 자료를 보면 극심한 고령화에 따라 우리보다 잠재성장률이 훨씬 낮은 일본은 지난해 지진, 태풍 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2017년 10월부터 12개월 연속 소매판매액이 플러스를 기록했다. 특히 10월의 소매판매액 증가율은 3.5%로 일본은 고용에 이어 민간소비 면에서도 한국보다 나은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부 기자들은 대기업 관계자뿐 아니라, 중소기업 관계자, 유통회사 관계자, 편의점과 식당 자영업자, 시장 상인 등을 만나서 현장의 애로를 듣는다. 대중교통이 없는 새벽 출근길엔 택시 기사에게 요즘 먹고살 만한지, 점심값을 계산할 때도 손님은 좀 늘었는지 물어본다. 지하철 안에선 광고 칸이 얼마나 비어 있는지 유심히 본다. 기자의 지인 중에도 20년째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서 고기를 파는 사람, 중·소 건설업자, 10년 넘게 호프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등이 있다. “요즘처럼 장사 안 되는 경우도 보기 드물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푸념이다. 기자에게 엄살을 떨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신할 만큼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거꾸로 문 대통령은 현장의 목소리를 얼마나 들어봤는지 묻고 싶다. 참모들이 대통령 심기 경호를 하며 통계의 구석에서 끄집어내 각색하는 숫자들은 참고용으로만 보는 게 좋겠다.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잘 짜준 각본에 따라 환호성만 터지는 행사장에도 그만 갔으면 한다. 대통령이 연초 경제 행보를 시작했다는데 각본 없이 시장에 가서 상인들을 만나보라. 근로시간 단축으로 손님이 줄었다는 음식점 주인도 만나보고, 최저임금 급등 여파에 잘려나간 60대 아파트 경비원과 50대 식당 종업원 도 만나보라. 그들 앞에서 “경제가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거나 “민간소비 수치가 좋으니 괜한 엄살떨지 말라”는 말은 절대 하지 못할 것이다.

my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