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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일은 일종의 범죄에 가깝지만, 열독이 허락된 일기가 있습니다. ‘독서 일기’입니다.

작가나 학자의 독서 일기, 다독가 혹은 책벌레의 독서 일기는 끝도 없이 넓고 깊은 책의 세계에서 나온 정돈된 책 리스트이고, 책에 대한 안내서이자 그 자체가 하나의 문학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의 선택을 받습니다.

올해 첫 주말 또 한 권의 독서 일기가 나왔습니다. 시인 서효인과 문학평론가 박혜진의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난다) 입니다. 두 사람은 민음사에서 편집자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주 5일 40시간을 한 공간에 머물며 책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라고 합니다.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는 ‘난다’의 ‘읽어본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입니다. ‘읽어본다’는 독자들에게 ‘책의 메뉴판’을 주겠다는 바람으로 기획돼 지난해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 뮤지션 요조, 시인 장석주·박연준 부부, 북카페 카페꼼마 장으뜸 대표와 편집자 강윤정 부부, 예스24 김유리 MD와 김슬기 기자 부부의 독서 일기가 나왔습니다. 여섯 번째 책인데 다시 새롭고 반가운 것은 같은 책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책은 2018년 한 해 동안의 읽기 기록입니다. 다만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는 매일의 책 읽기 기록이고, 7월부터 12월까지는 관심을 갖고 만져본 책들의 리스트입니다. 일 년 책살이입니다.

서효인 시인은 다운 증후군 아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쩔쩔매는 프랑스 남자 파미앵 툴메의 그래픽 노블 ‘내가 기다리던 네가 아냐’(휴머니스트)를 첫 책으로, 박혜진 평론가는 ‘힐빌리의 노래’(흐름)를 첫 책으로 시작합니다. 물론 책 전문가라지만 매일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독서 일기를 쓸 수는 없습니다. 어떤 날은 그날 읽은 책에 대해, 어떤 날은 그날 만난 작가에 대해, 어떤 날은 출장길 서점에 들러 산 책에 대해, 어떤 날은 사고 싶은 책에 대해, 어떤 날은 출근길에 들은 오디오 북에 대해 써내려갑니다. 편집자의 일상과 편집자로 일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한국 문학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겼고, 우리들의 세상살이, 영화·드라마·음악·취향과 취미가 책과 겹쳐 전해집니다. 책장에 꽂아두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 야금야금 읽어보면 좋습니다.

모두가 시작하는 새해 첫 주에, 나온 완성된 한 해 기록. 이들을 보면 아마 ‘나도 이런 일기를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만도 합니다. 게다가 새해라면 누구나 한두 개쯤 결심을 하는 시간입니다. 헬스장을 끊고, 금연도 꿈꿔보고, 다이어트도 결심하는.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짤막하게라도 1년의 독서 기록을 남겨보는 것, 그런 계획은 어떠신지요.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