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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우 前 통일원 차관

유엔 총회가 17일 북한인권결의안을 투표 없는 합의(consensus) 방식으로 채택했다. 14년 연속 채택이다. 결의안은 북한에서 지속하고 있는 ‘조직적이고도 광범위하며 심각한 인권 유린’을 예년과 같이 강력하게 규탄했다. 고문 등 가혹 행위, 강간, 공개처형, 법치의 결여, 정치적·종교적 이유에 의한 사형선고, 연좌제, 강제노역 등이 계속되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북한 당국에 모든 인권유린을 중단하고, 정치범수용소를 즉각 폐쇄하고 정치범을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모든 국가가 탈북자에 대해 난민협약상 강제송환금지원칙을 준수하라고 강력 촉구했다. 또한 안보리에 대해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방안과 북한의 반인도범죄 핵심책임자를 효과적으로 제재하는 방안 등도 계속 검토하도록 요청했다. 이는 김정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을 의미한다.

특이한 사항은 2017년 3월 24일 유엔 인권이사회 결의에 따라 북한 인권 서울 현장사무소의 책임규명 기능을 강화하는 조치를 환영하고, 더욱 박차를 가하도록 강력 요청한 것이다. 현재의 조사(monitor) 및 문서화 노력을 강화하기 위해 중앙보관소를 설치하고, 모든 정보와 증언을 전문가가 평가하도록 해서, 장차 책임규명절차의 전략을 강구하려는 것이다. 이번 유엔총회결의안에 한국도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노무현 정부 시기 북한 눈치를 보느라 기권해 외교적 망신을 당한 것을 되풀이하지 않아 다행이다.

그러나 지난 10일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평화를 통해 인권이 보장되고, 인권을 통해 평화가 확보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평화가 오기 전에는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문재인-김정은 간의 3차례 회담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그래서 국군포로나 납북자 가족, 이산가족, 탈북인사들은 분개하고 있다.

9월 19일 평양선언은 이산가족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이산가족 상설면회소를 빠른 시일 안에 설치하고, 이산가족의 화상 상봉과 영상편지교환 문제를 우선 해결해나가겠다고 했다. 전쟁의 피해자나 이산가족의 근본적 문제 해결은 이산가족의 소재와 생사 확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건 제쳐놓고 이산가족들이 10여 시간의 상봉 후 또다시 이별하는 것을 마치 큰 은혜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정치놀음에 불과하다. 그나마 지금까지 아무런 진전도 보이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 정권이 싫어하는 인권문제를 꺼내지 않으려 하는 자세다. 북한의 경제 파탄, 식량 부족, 의료시설 낙후와 같은 문제는 주민들에게 표현의 자유, 이동의 자유와 같은 보편적 권리를 인정하면 바로 해결된다. 정확한 처방은 내놓지 않고, 대북 지원이나 철도 연결에 국민 혈세를 낭비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북한의 2400만 동포들의 인권문제를 외면해 김정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것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못 본 체하는 것과 같다. 북한인권시민단체에 대한 후원 감소가 세무사찰 때문이라는 루머나 북한인권재단의 출범 지연도 우연이 아니다.

미국도 북한이 핵 포기 의사를 보이지 않자 인권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나섰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핵만큼이나 인권이 중요하다. 북한 동포들도 보편적 인권을 누려야 한다. 이를 외면하고 인권변호사라는 자랑을 한다면 민망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