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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동 경제산업부 차장

저출산·고령화가 화두(話頭)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의 포퓰리즘도 기승을 부린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뿐만 아니라 자유한국당 등 야당도 경쟁적으로 “저출산·고령화 예산을 늘리겠다”고 앞장서고 있다. 지난 8일 국회를 통과한 내년 예산을 보면 가관(可觀)이다. 올해 7096억 원인 아동수당 예산은 정부 안에서 1조9271억 원으로 171.6% 늘었는데, 국회에서 2356억 원을 더 늘려 최종적으로 2조1627억 원(증가율 204.8%)이 됐다. 내년 예산 심의 과정에서 여야는 심지어 법적 근거도 없는 ‘출산 장려금 25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합의했다가 막판에 철회하기도 했다. ‘임자 없는 돈(국민 세금)은 먼저 쓰는 놈이 장땡’이라는 식이다.

최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이행계획)’을 발표하면서 “아동수당 확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7세 이하 아동을 둔 전 계층에 월 10만 원씩 제공한다는 국회 합의안과는 별도로 지원 범위·수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하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동수당 대상 연령을 향후 선진국 수준인 12∼15세까지 확대하고,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에게 지급하는 수당을 다르게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한다고 한다. 진보 진영(陣營)은 입만 떼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보다 크게 낮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2016년 기준으로 OECD 가입국의 일반정부 부채(D2)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43.7%로 OECD 회원국 평균(112.7%)보다 상당히 낮다. 그동안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으면서 나라 곳간을 지킨 결과다. 보수든, 진보든 저출산·고령화를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異見)이 없다. 그러나 돈을 쓰더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르다. 지금처럼 얼마를, 어떻게 쓰겠다는 계획도 없이, 즉흥적으로 돈을 쓰면 천문학적인 돈은 쓰지만 기대하는 효과를 거둘 수는 없다.

그래서, 저출산·고령화 대책 마련을 위한 총액을 정하자고 제안한다. 향후 20년, 30년, 또는 50년간 500조 원도 좋고, 1000조 원도 좋다. 2017년 우리나라 명목 GDP가 1730조 원쯤 되니까 1700조 원으로 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적 합의를 통해 정해진 액수라면 얼마라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정해진 기간(예컨대 20년, 30년, 50년)에 얼마를 써서, 어떤 정책 효과를 거두려고 하는지를 미리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종합적인 대책을 만들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를 막기 위해서는 출산, 교육, 주거, 고용, 노후 생활 등 사실상 모든 분야의 대책이 필요하다. 총액을 정해놓고, 체계적으로 돈을 쓰지 않으면 한강에 모래 한 줌 던지는 격이 된다. 거지 적선하듯 내놓고, 정치적 표(票) 계산만 하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이제 그만 만들자. 기간과 총액, 예상되는 정책 효과를 계산한 뒤 정치 일정과는 무관하게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서 돈을 쓰자. 그래야 돈을 쓰고 난 후의 나라 곳간 상황(재정 건전성)을 예측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haed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