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대전 현충원 향하는 운구차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운구차가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을 떠나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 되풀이되는 ‘적폐수사 공식’

세월호 사찰·계엄령 문건 등
文대통령 “일탈 행위” 규정
이후 檢의 무리한 수사 논란

수사대상 조직은 괴멸 수준
법조계 “별건 수사로 발전
피의자 압박·망신주기 일쑤”

11일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날은 세월호 유족 사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장례식이 진행된 날이다. 특히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의 ‘불법 낙인’ 찍기 이후 검찰의 과잉수사, 이 과정에서 망신주기와 표적 수사 등의 양상이 나타난 뒤 수사를 받은 조직이 괴멸수준으로 망가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공식’이 사건마다 되풀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폐청산 수사 공식 = 우선 적폐청산 수사에는 문 대통령의 불법 규정이나 범죄 사실을 기정사실화하는 뉘앙스의 발언이 개입된다. 기무사령부의 세월호 유족 사찰 의혹이나 계엄령 문건 의혹,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모두 마찬가지다. 세월호 유족 사찰과 기무사 계엄령 문건 의혹의 경우 수사가 시작된 직후인 7월 문 대통령이 “구시대적이고 불법적 일탈 행위”라고 규정했으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서는 9월 “사법 농단 의혹이 사법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발언과 여론을 등에 업은 검찰은 과잉수사의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초기 특정 판사에게 불이익을 준 블랙리스트에서 시작해 재판 거래로, 이후 공보관실 운용비를 유용한 국고손실 등까지 수사가 확대됐다.

세월호 유족 사찰 의혹은 검찰이 이 전 사령관에게 ‘윗선’과 ‘정치적 목적’을 물으며 적용됐던 직권남용 외에 정치관여죄로 수사를 확대하려 한 정황이 있다. 세월호 유족 사찰과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았던 이 전 사령관 측 석동현 변호사는 “과잉수사는 항상 별건 수사로 발전한다”고 말했다. 서초동의 변호사는 “대통령의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식 발언은 과잉수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기무사 등 수사에 있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최우선 원칙으로 놓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역사상 정보조직이 정치적 중립 원칙을 훼손해 곤란을 겪은 경험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망신주기와 피의자 압박 등 양상이 나타난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첫 구속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경우 구속 수사가 부당하다며 항의해 묵비권을 행사 중이다. 이 과정에서 법관들마저 밤샘 수사와 검찰의 답정너 식 수사를 당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7일 극단적 선택을 한 이 전 사령관은 아들 집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검찰의 지인 접촉에 심리적 압박감을 크게 느낀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과잉수사를 통해 노리는 바는 ‘거물 표적’이다. 검찰은 몇 차례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철저한 상하 명령체계에 따른 범죄”라며 일찌감치 윗선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거론한 바 있다. 세월호 유족 사찰 의혹의 경우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윗선으로 거론된다.

◇망가진 조직 = 이 같은 수사를 통해 환자가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해부된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수사가 진행 중이던 7월 기무사는 정부와 여당의 파상 공세로 일찌감치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해편됐다. 이 과정에서 인력이 4200여 명에서 2900여 명으로 축소됐다. 11월 사실상 실체 규명에 실패했다는 계엄령 문건 수사 결과가 발표됐지만 이미 게임은 끝난 뒤였다. 수사가 진행 중인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해서도 이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최고법원은 ‘코드 인사’ 등으로 물갈이를 마친 상태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적폐수사라는 게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조치인데 지금의 세태는 적폐수사로 인해 적폐가 다시 만들어지는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서정우 법무법인 민주 변호사는 “편견과 선입견으로 미리 결론을 내린 뒤 무리한 수사를 통해 결론을 꿰맞추려 하고 있다”면서 “하명수사는 우리 법치를 근본부터 무너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