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문건 기소 어려워지자
‘세월호 유족사찰’사건에 집중
“윗선 불라는 억지 플리바게닝”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투신 사망(7일)으로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 사건의 ‘윗선’을 노리던 검찰 수사에 제동이 불가피해졌다. 10일 법조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불법 낙인’ 찍기에 따른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 수사의 허망한 결말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검찰은 이 전 사령관 수사에서 불법이나 강압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비극의 시작 = 이번 수사는 지난 7월 10일 인도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 의혹과 이른바 계엄령 문건에 대한 특별수사단 구성을 지시하며 시작됐다. 이후 문 대통령은 같은 달 27일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도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과 계엄령 검토는 그 자체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구시대적이고 불법적 일탈 행위”라고 밝혀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해석될 만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논란이 인 바 있다. 문제는 기무사 계엄 문건의 수사가 핵심 피의자로 꼽히는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의 미국 출국으로 사실상 수사가 어그러졌다는 점이다. 물론 조 전 사령관의 신병이 확보돼도 ‘구체적 합의’와 ‘실질적 위험성’이 인정돼야 하는 내란음모죄 기소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 전반의 평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검찰은 세월호 유족 사찰 사건에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불법 ‘낙인 찍기’가 검찰에 적잖은 압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무리한 수사논란 = 이 전 사령관은 사건과 관계가 없는 아들 집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본인에게 오피스텔을 제공한 업체 측과 접촉하는 검찰 수사에 압박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휴대전화) 요금 청구지가 그쪽으로 돼 있어서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했지만, 아들 집인 것을 확인하고 바로 나왔다”면서 “이 전 사령관과 동행했고 그가 현관 비밀번호도 눌러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업체 접촉은) 본인이 실제로 거주하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라고 해명했다. 검찰이 적용한 직권남용 혐의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군이 동원된 세월호 사고 수습 현장에서 실시간 현장 파악과 민간의 심리와 불만·요구 등을 수집해 보고하는 것은 기무사의 기본 임무라는 주장이다. 이 전 사령관 측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전 사령관의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검찰은 윗선에 대한 수사 방침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더 이상의 수사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사령관은 이미 구속된 실무자들과 윗선의 핵심 연결고리였기 때문이다.

◇적폐청산 수사 멈춰야 = 법조계 안팎에서는 무리한 적폐 청산 수사를 멈춰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은 전날 성명을 통해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적폐 수사가 표적 수사, 과잉 수사의 행태로 2년 가까이 자행되고 있다”면서 “검찰이 정권의 하명 수사를 계속하는 한 무리한 수사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정욱 법무법인 민주 변호사는 “지금 드러난 것을 보면 윗선을 실토하라는 취지인데 말도 안 되는 플리바게닝 수사이자 별건 수사”라면서 “이러한 잘못된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다면 ‘제2의 이재수’는 반드시 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서 변호사는 “정권이 바뀌면 임무가 사찰이 되고 적폐가 되는 식의 수사를 검찰이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정환·김리안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