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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스터시

체코 출신 구스타프 마하티 감독의 ‘엑스터시’(1933·사진)는 최초로 여성의 누드와 오르가슴을 그린 영화다. 노출의 수위와 선정성으로 바티칸 신문에서는 ‘교황이 영화를 금지하도록 권장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고, 미국에서는 노출 장면 등이 삭제되거나 수정돼 제작 후 6년 뒤인 1940년에 개봉됐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초기 영화가 그려내는 섹슈얼리티에 열광했다. 이 영화는 유럽 전역에서 관객을 끌어모으며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주연 여배우 헤디 라마의 할리우드 입성에 힘을 실어줬다.

영화는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중년 남자 에밀(조니미르 로고즈)과 어린 신부 에바(헤디 라마)의 결혼 첫날밤으로 시작된다. 남자는 행복한 듯 보이지만 정작 신부와 잠자리를 가지려 하질 않는다. 에바는 이상하게 여기지만 남편에게 시간을 주기로 한다. 그렇게 수많은 날이 흐르고 에밀은 여전히 잠자리를 피하기만 한다. 남편이 성 불능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에바는 절망과 충격으로 집을 나와 아버지의 집으로 간다. 말을 키워 파는 일로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는 아버지 집에서 에바는 마음에 드는 말을 타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늘 그렇듯 종일 말을 타던 에바는 숲에서 강을 발견하고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수영을 한다. 수영을 마치고 돌아온 에바는 자신의 말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에바 앞에 그의 말을 찾아 데리고 온 동네 청년 아담(아리버트 모그)이 나타난다. 눈은 이미 에바의 알몸에 고정돼 있지만 애써 고개를 돌리던 아담은 에바에게 꽃을 건넨다. 그렇게 숲 한가운데서 ‘아담과 이브’의 로맨스가 시작된다.

이미지 크게보기 김효정 영화평론가

그날 이후 에바는 아담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의 젊은 육체와 자신의 알몸을 바라보던 눈길 등이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에바의 욕망에 불을 지핀다. 밤새 뒤척거리던 에바는 결국 외딴곳에 살고 있는 아담의 집으로 향한다. 불쑥 현관 앞에 나타난 에바를 아담은 품어 안는다. 어둠침침하고 누추한 아담의 통나무 집에서 에바는 처음으로 오르가슴을 배운다. 그토록 갈망했던 쾌락과 만족으로 에바는 아침이 되도록 아담의 품을 떠나지 못한다.

서로를 너무나도 간절히 원하지만 젊은 연인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출장길에 오르던 에밀이 우연히 아담에게 도움을 받게 되면서 자신의 아내인 에바와 아담의 관계를 목격하게 되고, 절망한 그는 그 자리에서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이 영화가 유명해진 것은 영화사에서 최초로 시도된 오르가슴의 재현에 기인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포르노가 아닌 예술영화로 기획, 제작됐다. 따라서 이 영화의 볼거리는 라마의 누드와 오르가슴을 담아낸 얼굴 클로즈업뿐만 아닌 전반에 포진해 있는 뛰어난 미장센이다. 마하티는 숲속의 벌레, 들풀, 끊어진 진주 목걸이 등 다양한 물체와 자연 속 소품을 이용해 초현실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장면들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장면들은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나 앞으로 다가올 사건에 대한 복선과 상징으로 쓰인다.

이 영화는 ‘섹스영화’로만 치부되기엔 아까운 작품이지만 라마에게는 낙인에 가까운 이미지가 씌워졌다. 1940년대 할리우드를 지배했던 라마가 이 영화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어 본격적으로 메이저 영화에서 활약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오르가슴 배우’라는 멍에를 벗어나지 못했다. 연기력이 뛰어난 그지만 주로 성적 에너지가 넘치는 야생녀(‘화이트 카고’·1942) 혹은 남주인공을 유혹하는 섹시한 외국 여성(‘여권 없는 여인’·1950) 등의 역할이 주어졌고, 미디어와 사교모임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의 오르가슴 장면을 언급했다. 발명가로서의 라마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밤쉘’(감독 알렉산드라 딘·2017)에서 그는 할리우드 사람들이 자신을 ‘연기하는 창녀’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엑스터시’는 오르가슴의 첫 등장으로 영화사적 기록을 남겼지만 라마에게는 생의 마지막까지 따라다닌 저주였던 셈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