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4년새 34% 늘었는데
혐의적용 가이드라인 없어
경찰, 재량에 따라 처분결정

일명 ‘몰카(몰래 카메라)’를 이용한 불법촬영 범죄의 심각성이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불법촬영 혐의를 인정하는 판단 기준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어 일선 경찰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당사자의 동의 없이 길거리를 지나다니던 여성을 촬영한 외국인 A(39) 씨의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에 대해 불기소(혐의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26일 밝혔다.

A 씨는 지난 12일 양천구의 한 횡단보도에서 여성을 몰래 휴대전화로 촬영하다 우연히 현장을 지나가던 현직 경찰관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한국 여성들의 짧은 치마가 신기해 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여주려 사진을 찍었을 뿐”이라며 혐의를 적극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천경찰서 관계자는 “조사 결과 촬영물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폭증하는 불법촬영 범죄와 더불어 모호한 처벌기준이 수사기관의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성폭력처벌법에서는 카메라 등을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할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수사관에 따라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촬영물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몰카 범죄의 처벌 요건인 ‘성적 욕망’과 ‘수치심 유발’의 기준부터가 모호하다. 한 경찰 관계자는 “불법촬영 범죄의 혐의 적용 기준에 대한 경찰 내 가이드라인은 따로 없다”며 “수사관들의 재량에 따라 처분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경찰이 적발한 불법 촬영 범죄는 6465건으로 2013년(4823건)보다 34% 증가했다. 하지만 재판에 넘겨지는 비율은 낮아졌다. 불법촬영 범죄의 기소 비율은 2013년 54.5%에서 2017년 34.8%로 내려갔다. 갈수록 낮아지는 기소율에는 애매한 판단 기준이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 검찰은 지난달 ‘불법촬영 범죄 사건처리 기준’을 마련했고, 실제 사건에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법원에서도 촬영 상태나 상황에 따라 유무죄가 엇갈린 판결이 내려지다 보니 일선 경찰의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조금 과장하면 불법촬영 혐의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적용이 가능하다”며 “불법촬영 용의자가 우리 경찰서에 잡혀 오면 당장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희권 기자 leehek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