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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찬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장

올해 초에 터졌던 라돈 침대 사건은 온 국민을 불안감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사건이 터지자 정부는 인체에 유해한 독성물질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피해 원인을 찾는 데 주력했고, 이 과정에서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이 제대로 이바지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안전성평가연구소가 함께 독성물질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융합연구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융합연구는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문제 해결과 인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노벨상 수상자를 들여다봐도 이런 추세가 확연하다. 한국연구재단 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7년까지의 노벨 과학상 단독 수상자는 2명에 불과한 반면, 융합연구를 통한 공동 수상자는 19명에 이른다. 이제는 ‘나 홀로 연구’만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융합연구 수요는 더욱 커졌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기술 간 융합으로 태동한 새로운 분야가 급속히 부상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사회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며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야 간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21세기 들어 융합연구를 강화하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시설, 인프라스트럭처(SOC) 공유 등 ‘기계적 결합’은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나,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 상호 공감하고 이해함으로써 생겨나는 팀워크 등 ‘화학적 결합’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연구자들이 단일 분야에 몰두해 성과를 내는 데는 익숙한 반면,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 소통하는 것에는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은 연구·개발(R&D) 과제의 성격 자체가 바뀌었다. 연구자들이 사회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는 만큼 연구 공동체의 목표도 복잡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연구자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과 소통하는 능력,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받는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리더십과 공감 역량 개발이 미래 인재의 요건이 됐다.

그동안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선진국의 경험을 빠르게 답습하는 ‘추격자’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에 이론과 지식 중심의 R&D 교육에 집중했고, 상대적으로 리더십과 공감 역량 개발엔 소홀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과학기술 인적자원 개발(HRD)의 영역을 폭넓게 확장해 분야별 R&D 역량은 물론, 리더십과 공감 능력을 두루 갖출 수 있도록 통합적 역량 개발 모델을 제공해야 한다.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은 과학기술 전문인력 재교육을 통해 경력 전문성을 높이고 리더십과 공감 역량을 강화해 국가 R&D 투자 효율성 제고에 기여하고자 설립됐다. 그리고 KIRD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 올해 초 R&D, 리더십, 공감 분야별 필요 역량을 구체화한 ‘과학기술인 역량개발 표준서(SDF)’를 개발했다. SDF는 향후 연구자와 연구관리자 및 정책입안자의 통합역량 교육 체계 수립과 경력 개발에 활용될 예정이다.

통합역량을 갖춘 과학기술인 육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융합연구가 핵심인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문제 해결력과 소통 능력을 갖춘 과기인(科技人)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재를 얼마만큼 확보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의 척도가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통합역량을 갖춘 과학기술인 양성에 주력하고, 현장의 연구자들은 시대정신에 호응하며 변화와 혁신의 장으로 당당히 걸어가야 할 것이다. R&D와 리더십, 공감 역량으로 무장한 과학기술인이 세계를 주름잡는 대한민국의 희망찬 앞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