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쪽방촌에 있는 한 목조 건물에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참사 고시원’과 환경 유사한 종로 여관·쪽방촌 가보니

대여섯개 방 다닥다닥 붙어
비상구는 비좁은 계단뿐

부엌 따로없는 노후 쪽방촌
방안서 버너로 취사·난방
“소화설비 감독 중요하지만
안전의식 없으면 무용지물”

이미지 크게보기 2006년 8월 16일 마지막으로 점검을 받은 소화기가 12일 서울 종로구 한 여관에 그대로 비치돼 있다.

지난 9일 7명의 생명을 앗아간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화재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예고된 비극’이었다. 올해 1월 20일 서울 종로구 여관 방화 사건 후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취약 주거 시설에 대한 화재 위험이 계속 지적됐으나 12일 종로구 일대 쪽방촌과 낙후된 여관들은 언제 같은 참사가 반복돼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이날 낙원동 A 여관 유리문 뒤로 놓인 소화기에는 먼지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여관 주인은 “얼마 전 소방시설 검사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소화기에 쓰인 마지막 점검 일자는 2006년으로 12년이나 지나 있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여관 입구에 있는 방수용기구함이 눈에 띄었다. 열어 보니 먼지가 가득했다. 여관 내부에 들어서자 대여섯 개의 방들이 좁은 복도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여관에서 나올 수 있는 통로는 입구에 있는 비좁은 계단뿐이었다. 종로3가의 B 여관도 복도에 스프링클러가 없는 데다 비상구는 중앙계단뿐이다. 윤용균 세명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옛날 건물들은 스프링클러가 없는데, 대피로마저 좁고 빠져나오기 어려우면 큰 인명피해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창신동에 있는 쪽방촌은 언뜻 보면 ‘화재안전지대’처럼 보였다. 비상 소화장치가 골목에 널찍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고, 집마다 소화기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오모(여·62) 씨는 “지난해에도 화재사고가 있었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김모(83) 씨 역시 “한 방에서 불이 나면 다른 방에도 불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 지역 쪽방촌은 대개 목조나 시멘트로 지어진 주택에 대여섯 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형태다. 겨울이 되면 쪽방촌 주민들은 전기장판을 이용해 작은 방에 온기를 채운다. 오 씨는 “가스버너를 난방에 사용하는 주민들도 있다”고 말했다. 주방이 없다는 것도 화재 위험을 높인다. 주민들이 좁은 방에서 가스버너를 이용해 요리하다 보니 불이 붙기 쉽다.

고시원들도 화재에는 여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불이 난 고시원 건너편의 C 고시텔 건물은 2층을 사무실로 쓰고 있었지만 낡은 소화기에는 점검 일자조차 표기돼 있지 않았다. 종로의 D 고시텔도 5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에서 단 한 대의 소화기도 발견할 수 없었다. 국토교통부 조사에서 여관, 쪽방, 고시원 등 비(非)주택에 사는 인구는 2016년 기준 37만 가구(오피스텔 제외)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