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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배우 안성기

“성기 나이가 몇이야?”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조명감독을 했다는 분이 물었습니다. 지난 9월 이장호 감독 상가에 영화인과 언론인들이 모였을 때였습니다. 안성기 배우가 앉아 있는 자리가 좀 떨어져 있으니까 맞은편에 있던 저에게 대신 물었던 것이지요. 영화 일을 함께한 옛 동료로서 문득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웃으면서 답했습니다. “계절 나이로는 가을인데요, 몸은 여전히 청춘이랍니다.”

안 배우가 이번에 신성일 선생 장례위원장을 맡은 것을 보면서 그때의 문답이 떠올랐습니다. 부위원장을 맡은 이덕화 배우와 1952년생 동갑인 것에 생각이 미쳐서이지요. 굳이 따지면, 안 배우가 생일이 몇 개월 빠릅니다. 물론 영화계 데뷔로는 훨씬 더 빠르지요. 안 배우는 만 5세인 1957년에 영화 ‘황혼열차’에 출연했으니까요. 이 작품은 배우 김지미 선생의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제가 어느 칼럼에서 농을 섞어 말했던 것처럼, 안 배우와 김지미 선생은 데뷔 동기인 셈이지요.

안 배우는 학업에 열중했던 고교, 대학 시절을 빼면 생애의 대부분을 영화와 함께 살아왔습니다. 한국 영화 르네상스 이전 시기인 1980년대에 독보적인 배우로 스크린을 지켰습니다. 1990년대 이후로도 한국 대표 배우로 자리해 왔지요. 이는 평소에 언제라도 연기할 수 있는 심신 상태를 유지하고, 촬영 현장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중년 이후로는 ‘라디오 스타’에서처럼 조연도 기꺼이 해냄으로써 ‘더불어 빛나는 별’로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지요.

안 배우의 따스한 품성은 영화계 안팎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누구를 만나도 특유의 부드레한 미소로 대하지요. 작가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유명인사들은 세상에 가면을 보여주고 실제 모습은 감추려 한다. 남들이 바라는 모습을 연기하고 더 잘하기 위한 연습도 한다.” 안 배우도 대중이 바라는 모습을 연기하는 것이겠죠. 그래도 그 모습이 한결같은 것은, 내면의 단단함을 믿을 수 있게 합니다.

안 배우는 영화계 내에서 세대, 진영을 아우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한다며 스스로 초들지는 않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조용히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연전에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이런 메모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소한 손짓이 큰 너그러움을 만들고／위대함은 작음에서 시작한다는 것을／그날 그에게서 보았다.／／바닷가 호텔에서 열린／부산영화제 위원장의 은퇴 자리였다.／기념 촬영을 하는 순서에／그가 김지미, 신성일 선배를 안내해서／단상에 정중히 모셨다.／／그때 사람들이 붐비는 홀에서／문성근이 홀로 서성거리는 게 보였다. 영화 동네가 편을 갈라 싸우던 시절에／노장 김지미의 반대쪽에 있었다는／소문의 장본인이었다.／／그가 홀 쪽의 문성근을 향해 부드럽게 웃으며 손짓을 했다. 어서, 이리 와.／／문성근이 어색한 얼굴을 하면서도／단상으로 올라왔고,／김지미와 노장들은 모르는 체／슬며시／자리를 열어줬다.’

안 배우는 영화계뿐만 아니라 문화계를 대표하는 일을 많이 맡습니다. 신성일 선생 장례위원장도 그렇지만, 이달 초엔 아시아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애썼지요. 최근엔 농악 홍보 대사를 수락했습니다. 제가 “거절하지 못하는 성품 탓에 고생이 많으시다”고 했더니 “소중한 일들이기 때문에 즐겁게 한다”고 답했지요. 장례식장 화장실에서 가볍게 던진 인사말이었는데, 너무 진지하게 답을 해서 민망했습니다. 그러나 그 진심이 느껴져서 절로 고개를 끄덕거렸지요.

안 배우는 자신에 관한 평문 중에 일본인 무라야마 도시오(村山俊夫)의 것이 특별히 좋다고 했습니다. 출연 작품들의 배경이 되는 당대의 사회 풍경을 잘 그려놨기 때문이죠. 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 관객으로서 안 배우의 작품과 더불어 시대를 흘러온 행운을 귀하게 품게 되더군요. 생애의 가을을 잘 물들여 가고 있는 배우를 동시대에 만날 수 있는 기쁨도 새삼 보듬어봤지요.

다만 안 배우가 스크린 밖에서 소모하는 에너지가 작아졌으면 합니다. 그 일들이 소중해도 영화를 통해 세상과 대화를 나누는 것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년 개봉 예정인 영화 ‘사자’에 출연하고, 또 이장호 감독이 추진하는 새 영화에도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반갑습니다. “여전히 다음 작품이 최고작이 될 거라고 여긴다”는 안 배우의 말을 여전히 믿으니까요.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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