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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최근 고용 상황이 매우 안 좋다. 9월 기준 실업률은 3.6%로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청년실업률도 외환위기 이래 최악인 10%대에 접어들었다. 고용의 질도 떨어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상반기 고용 동향을 보면,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에서 비정규직(3만9000명)이 정규직(2만9000명)보다 더 많이 늘었다. 2011년 이후 처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했다. 취임 후 1호 지시는 ‘일자리위원회 구성’이었고, 첫 일정은 ‘일자리 상황판’ 설치였다. 취임 후 첫 현장 방문지도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촉구하기 위해 간판 공기업인 인천공항공사를 찾았다. 고용도 늘리고, 고용의 질도 높이겠다는 게 정부의 확고한 의지였다. 그런데 결과는 희망과 반대로 가고 있고, 반전의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바다 같은 민간이 아닌 섬 같은 공공부문 고용에 의존하고, 중장기적으로 고임금의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혁신을 멀리하기 때문이다.

10년 만에 최대폭인 9.7%가 증액된 470조 원짜리 내년 예산안은 한마디로 복지와 공공일자리 예산이다. 장하성 정책실장은 이 예산안이 통과돼 소득주도 성장이 본궤도에 올라서면 경제가 호전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효과가 없진 않을 것이나, 민간 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고용을 늘릴 환경을 조성하지 않는다면 내년도 슈퍼 예산의 효과는 일회성이 될 것이다. 혁신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하는 통로는 온갖 규제와 시민단체 및 이해관계자들의 반대로 봉쇄돼 있다.정부 스스로가 일자리를 유지해야 한다며 혁신을 멀리하기까지 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6700명에 이르는 통행료 징수원의 일자리 감소 문제를 고려해 고속도로 무인화(스마트 톨링) 사업이 축소됐다.

1973년 오일 쇼크를 계기로 서구 경제가 불황과 고실업에 빠져들 때, 당시 정치 세계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유럽 좌파 정부들은 소비를 진작하기 위해 복지 지출을 늘리고, 실업률을 떨어뜨리기 위해 공공부문의 고용을 늘렸다. 그러나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저성장, 인플레이션 그리고 고실업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초유의 현상이 발생했다. 늘어만 가는 세금과 재정 적자는 덤이었다. 투자는 위축되고 고용은 줄었다. 민간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 것이다. 경제 실패로 인해 좌파 정부들이 몰락했다.

1979년 마거릿 대처의 영국을 비롯해 스웨덴에서조차 보수 칼 빌트 내각이 들어섰다. 민영화, 감세, 규제개혁, 노동시장 유연화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 개혁을 이루고 나서야 경제가 살아나고 고용이 증가했다. 독일의 경제 부흥을 이끈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와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는 1999년 ‘제3의 길’ 공동성명에서, “경제성장과 일자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정부의 능력은 과장됐고, 부를 창출하는 개인과 기업의 중요성은 폄훼됐었다”며 과거를 반성했다.

문 대통령은 1일 국회 연설에서 규제개혁과 혁신성장을 약속했다. 복지와 함께, 시장에서의 경쟁과 ‘창조적 파괴’도 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을 적폐로 보는 정권의 지지 기반인 시민단체와 노조 그리고 여당 내 반대론자들에 대한 설득과 돌파가 문제다. 창업과 혁신을 도울 유연한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개혁도 필요하다. 1970년대 유럽의 좌파 정부에서 실패(失敗)를 경험한 정책들만 한국에서 강도 높게 추진돼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40년 전 유럽의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