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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올해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지난 29일 종합감사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이번 국감 기간 중 여야 간에 대립이 컸던 사안 가운데 하나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의 추가 비준 여부였다.

ILO는 181개 이상의 협약과 188개의 권고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서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알려진 8개의 협약은 187개 회원국 중에서 143개국이 모두 비준한 것으로서 보도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은 일부만 비준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단지 2개, 일본은 6개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4개를 비준했으며,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제98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제29호), 강제노동의 폐지에 관한 협약(제105호), 이 4개에 대해서는 비준을 유보한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후보 시절부터 위 4개 협약을 추가로 비준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따라서 현 정부가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이행하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1단계로 추가비준에 대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노사정 합의안을 이끌어 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다만, 새로이 발족한 경사노위에 민주노총이 참가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합의안을 이끌어 내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정이라면 차라리 추가비준을 서두르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정부 차원에서 면밀히 득과 실을 따져 본 후 이를 토대로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을 선행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자칫하면 추가비준이 국가안보는 물론이고 사회질서 유지에 근간이 되는 국내법과 충돌되는 불행한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강제노동과 관련된 제29호와 제105호의 경우에는, 비준하더라도 사회적으로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 두 조항을 비준하는 경우 공익근무요원 제도나 구속된 불법파업 참가자에 대한 강제노역 제도 등이 이 협약과 상충될 소지가 있어 이 역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노조활동 보장과 관련한 제87호와 제98호의 비준 여부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문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노동계가 요구하는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강력히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은 실업률 급증과 설비투자 및 공기업 수익률 급감이라는 부작용만 발생했다는 의심들이 급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와 무관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긴 하지만,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의견들이 대세이다.

결국, 노동계가 요구하는 제87호와 제98호에 대한 비준 역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은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도 그 어느 나라보다 노조를 강력히 보호하는 국가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 중 상당수는, 제87호와 제98호가 비준되면 해직교사의 노조 가입 허용, 전교조 합법화, 공무원·교사 파업, 특수고용직 노조 설립 등이 정당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저성장 구조와 실업률 급증, 설비투자 급감이라는 긴 어둠의 터널로 들어섰다. 이 시점에 4개 협약을 추가비준하겠다는 정부의 노력은 신의칙(信義則)상 적절치 못한 정책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런 만큼 “협약의 추가비준 추진이 기업 활동에 또 다른 불확실성을 키우는 불씨가 되고 있다”는 경영계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