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홍귀희, 미명, 142.5×52㎝, 한지에 수묵담채, 2018

고흐의 야경 그림에 매료된 순례객들이 지금도 심심치 않게 아를의 론강 밤하늘을 찾곤 한다. 울트라마린의 검푸른 하늘에 주먹만 한 별들이 보석처럼 박힌 그의 임파스토 화면은 독보적이다. 그런데 같은 야경이면서도 너무나 대조적인 또 하나의 화면이 있으니 흥미롭다.

야경작가 홍귀희의 그림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조리개를 최대치로 열어놓은 채 미동도 않고 밤새 기다렸다 얻은 사진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적이다. 사진에만 의존했으면 이런 아우라가 발현될 수 있을까(매체로 전달되는 이미지는 그저 사진처럼 보일 뿐이기에 안타깝다). 평범해 보이지만 종이의 미세한 텍스처와 붓의 흔적, 안료의 미립자조차도 극한적 표현을 위해 용의주도하게 사용되고 있는 느낌이다. 공기의 분자까지도 말이다.

고도로 절제되고 정제된 단순 구조의 화면은 별이나 구름을 그리려 하지 않았다. 불친절하다 싶을 정도로 과묵한 그림이다. 그러나 그 허공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도사리고 있을 법한 분위기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많을수록 과묵해지는 우리만의 독특한 미의식이 서구인들에게 얼마나 이해되고 있을까.

이재언 미술평론가·인천 아트플랫폼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