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박사님, 연봉이 얼마예요?” 초등학교에 과학 특강을 나갔던 지인이 돌아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심 강의 내용이나 과학자가 되기로 한 계기 등을 궁금해할 것으로 기대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기껏 질문한다는 게 ‘1년에 얼마나 버는지’ ‘오늘 강의료가 얼마인지’란 게 심히 한심하다고 했다. 나는 그분에게 학생들 탓할 게 못 된다고, 왜냐하면 그들이 바로 우리의 거울이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다.
겨우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 커다란 알파벳이나 한자 학습판을 들이미는 게 우리 어른들이다. 새가 어떻게 나는지도 모른 채 ‘새’란 글자를 먼저 배우고, 물고기를 만져보기 전에 ‘물고기’란 글자부터 익힌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에게 새와 물고기는 그저 요리의 재료로 간주될 뿐이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비상하는 새와 연못을 차고 뛰어오르는 물고기의 활발발(活潑潑)한 기운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 점에서 간디의 오래된 교육철학은 여전히 새롭다. “아이들은 쓰기를 배우기 전에 먼저 그림 그리기를 배워야 한다. 어린이가 꽃이니 새니 하는 다른 물체를 관찰해 배우듯이 글자도 관찰해서 배우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글씨를 쓰는 것은 물체를 그릴 줄 알게 된 뒤에 배우도록 해야 한다.” 간디는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 능력 없이 개념부터 주입하는 공부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옥죄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미지 크게보기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같은 유학자라도 왕수인(왕양명)의 교육론은 달랐다. 주희보다 300여 년 뒤에 활동한 왕수인에 따르면 당시 학교는 “아이들이 잘하는 것을 키워줄 생각은 않고, 날마다 구두점 찍기와 고시형식의 문장만 가르치는” 고시원으로 전락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선생을 원수처럼 여겨 피하고 거짓말하고 제멋대로 한다. 그 경박함과 용렬함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간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학교 현장을 보는 것 같다.
그의 대안은 무엇인가? ‘어린아이를 가르칠 때는 반드시 그들의 취향(趣向)을 고무시켜서 속마음이 즐겁도록 해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 키워주어야 한다. 부질없이 많이 가르쳐 주는 것보다는 정밀하게 익힐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200자를 익힐 수 있는 자에게는 100자만 정밀하게 가르쳐 주고, 스스로 터득하는 기쁨(自得之樂)을 맛보게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자득지락 학습법의 최고 수혜자가 바로 세종이다. 큰형 양녕과 달리 그는 어린 시절 주자학 공부에 매달리지 않아도 됐다. 세자가 아니었던 그에게 부왕 태종은 주자학 중심의 제왕학 학습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태종은 “너는 할 일이 없으니, 평안하게 즐기기나 하여라(汝無所事 安享而已)”라면서 글씨 쓰기와 그림 그리기, 꽃 가꾸기와 수석 모으기, 악기 연주 등 모든 교양학습 자료들을 두루 갖춰주었다. 부모로부터 부담받지 않은 채 스스로 터득해 가는 공부의 기쁨을 알게 한 것이 인성을 갖춘 뛰어난 리더를 만든 것이다.
역사 속 많은 교육 사례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글자를 가르치기 전에 사물을 관찰하고 먼저 그려보게 하는 과정, 개념을 외우게 하기 전에 아이들의 취향(趣向)을 발견해 북돋우는 교육, 무엇보다 아이들 스스로가 터득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는 학습을 하지 않으면 청소년들의 장래가 없다는 엄중한 경고가 아닐까.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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