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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당’으로 이름 알린 박충선

장인·장모 모시고 함께 관람
아내가 엉덩이 두드려 주었죠
지금도 언제나 스스로 채찍질

“몇 달씩 일이 없어 좌절했던 때가 생각나네요. 그래서 요즘도 현장에 있는 날은 다이어리에 꼭 빨간 펜으로 체크를 해요. 나중에 그걸 보면서 자신을 한 번 더 채찍질하는 거죠. 영화 데뷔 24년 만에 처음으로 가장 노릇 좀 한 것 같아요.”

영화 ‘명당’은 ‘안시성’ ‘협상’과의 추석 시즌 3파전에서 관객동원 2위를 했다. 손익분기점인 320만 명에는 못 미치지만 200만 명이 넘는 관객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조승우, 지성 등 영화의 얼굴을 한 배우들의 노력도 있지만 작은 역할을 묵묵히 해낸 조연들의 땀도 숨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조승우와 대립하는 지관 정만인을 연기한 박충선(54·사진)은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캐릭터였다.

“영화 속에서 정만인은 철저히 악인으로 설정돼 있지만 제가 보기엔 자기 트레이닝이 강한 인물 같았어요. 무척 하고 싶었는데 결국 배역이 제게 왔을 때 전율했어요. 그 뒤로 매일 밤 시나리오를 끼고 살았죠.”

얼굴을 보면 “아, 그 배우” 하지만 이름 석자 만으로는 여전히 관객에게 낯선 박충선에게 ‘명당’의 정만인은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대학가를 강타했던 16㎜ 장편 ‘오 꿈의 나라’ 출신이지만 연극과 뮤지컬, 어린이 드라마를 전전하다가 상업 영화에 입문한 게 1994년. 그 후 출연한 영화만 50여 편이고 맡은 역할도 수십 가지지만 제대로 이름을 알린 적이 없었다. 대개 단역이고, ‘주인공을 받쳐주는’ 역할에 그치다 보니 대표작이나 대표 캐릭터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그맘때 MBC 드라마도 찍었는데 제 별명이 ‘MBC 공식 거지’였어요. 연극 ‘절망 세일’에서 지하철역 노숙자 역할을 했던 게 방송작가의 눈에 띄어 드라마에 출연한 건데 그 뒤로 1년간 거지 역할만 했으니까요. 그래도 작품이 없어서 못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죠.”

기회를 맞아 박충선은 배역을 곱씹었다. 웃음을 여러 가지 색깔로 준비하고, 시나리오상에 표현되지 않은 간극을 찾기 위해 연구했다. “그동안엔 더그아웃에 있는 야구 선수 같았다고 할까. 그래서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컸고 집중했어요. 저는 시나리오를 골라서 할 입장도 못되고 또 이런 기회가 자주 오지는 않을 테니까요.”

다행히 그의 노력은 어느 정도 통한 듯하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정만인의 연기를 칭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제 “아, 그 배우”에서 ‘명당’의 박충선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추석 연휴에 경북 봉화에 있는 처가에 들러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명당’을 관람했어요. 장모님은 ‘잘 봤다’고 하시고, 평소 투정 한마디 없던 아내는 웃으며 제 엉덩이를 두드려 주더라고요. 늦게 결혼해 아이들이 아직 어려요. 선배 배우로서, 가장으로서 책임도 더 강해졌고요. 타석에 자주 서는 배우가 되는 게 꿈입니다.”

김인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