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전문가들, 우려 제기
“北 논리로 美 설득하는 모습
왜 우리 스스로 기준 낮추나”

한·미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핵 신고를 미뤄둔 ‘영변 핵시설 검증·폐기 및 종전선언 교환’과 관련해 “북한식 단계별 접근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4일 통화에서 “북핵 신고 문제를 뒤로 돌린다면, 나중에 북핵 협상이 정체됐을 경우 그간에 있었던 남북 협력이나 북이 받은 혜택은 다 무용지물이 된다”며 “그 과정에서 북한은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고 제재망이 약화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이런 상황은 협상을 추동할 수 있는 힘이 약화되기 때문에 잘못된 접근”이라며 “우리 정부가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촉진하기보다는 북한 편에 서서 북한의 논리를 미국에 설득하는 모습이고, 우리 스스로 기준을 낮추는 것 같아 안타까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북핵 포기의 진정성 판단 기준은 신고 검증”이라며 “그걸 안 하고 뒤로 미루면, 그동안 확인한 북한의 진정성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원래 협상 대상은 종전선언과 핵 리스트 신고였기 때문에 영변 핵시설 검증·폐기 정도는 미국이 못 받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우 실장은 이번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에 대해서는 “폼페이오 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는 게 비핵화에 진전이 있어서라고 결론을 내릴 근거는 없다”며 “이번 방북에서는 ‘추후 실무회담을 통해서 정상회담을 논의하자’는 것 외에 나올 게 없어 보인다”고 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이날 워싱턴포스트에서 “영변 핵 시설 폐쇄가 (비핵화의) 첫 단추로는 괜찮은 출발이지만, 유일한 합의로 판명된다면 완전히 불만족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두연 신미국안보센터(CNAS) 한국 담당 연구원도 같은 매체에서 “북한의 영변 핵 시설 폐쇄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북한은 여전히 다른 지역의 은밀한 시설에서 핵무기와 핵분열 물질 생산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민환·박준희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