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度넘은 사법부 공격

경실련, 실명까지 거론 성명
檢 “기각을 위한 기각” 비난도
법원 판결 불신 확대 재생산

“압력단체 등서 독립성 중요
법관 위협은 법치주의 훼손”

“허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구속영장을 기각한다면 국민의 큰 분노와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진보 성향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20일 성명서를 통해 “허 부장판사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바 있어 또다시 ‘사법 농단’ 수사를 방해할까 우려스럽다”며 이같이 밝혔다. 유 전 연구관의 구속영장심사가 진행 중인 시점에 정권과 코드가 맞는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시민단체가 담당 판사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압박에 나서기는 이례적인 일이다.

시민단체뿐이 아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사법부를 향해 도를 넘어선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 21일 법조계에서는 “법원 안팎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움직임이 법치훼손을 초래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여기에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의 과도한 반발도 한몫하고 있다.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될 때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여왔던 검찰은 전날 밤늦게 유 전 연구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기각을 위한 기각사유”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는 법원이 유 전 연구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검찰이 주장한 구속 사유를 조목조목 반박한 이유기도 하다. 그간 법원이 ‘범죄 소명이 부족하다’ 등 간단한 기각 사유를 밝혔던 점을 감안하면 3600자에 달하는 장문의 기각사유는 이례적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을 통한 판사 파면 요구 등도 빗발치고 있다. 허 부장판사는 7월 권성동(강원 강릉)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후 해당 게시판에서 파면을 요구당하기도 했다.

최근 사법부에 대한 공격이 ‘말’로만 끝나지 않으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남 여수시법원에 소액 사건 담당 판사로 재임용돼 화제가 됐던 박보영 전 대법관이 시위대 탓에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험난한 첫 출근을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시위대는 박 전 대법관이 대법관 재임 시절 내린 ‘쌍용차 정리해고가 적법했다’는 취지의 판결에 대해 해명을 요구했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부는 행정권이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뿐만 아니라 특정 압력단체 등으로부터의 독립도 중요하다”면서 “법관의 독립성을 주장하면서 오히려 법관에게 심리적 위협을 주는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를 위축시키고 법치주의를 훼손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사법부 불신의 확대재생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곰탕집 성추행 사건’에서 1심 재판부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에게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하자 아내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억울하다는 취지의 청원을 올렸고 30만 명이 동참했다. 상당수는 이 판사에 대해 파면과 처벌을 촉구했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