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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행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의 발언이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사법부와 관련한 가장 뜨거운 쟁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이른바 ‘재판 거래’ 의혹이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사법부의 대응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그런데 지난 13일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이 사법 농단을 기정사실로 하면서 사법부가 촛불시위의 정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 것이나, 사법개혁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는 발언은 적절치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김 대법원장이 이를 받아서 “최근 현안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드린 것에 대해 사법부의 대표로서 통렬히 반성하고 다시 한 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한 것이다.

대통령이 선생님처럼 사법부를 야단치고, 대법원장이 학생 대표처럼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을 느끼기는 힘들다. 삼권분립이란 국회와 정부, 사법부가 대등하다는 것인데, 대통령과 대법원장은 결코 대등해 보이지 않았다. 또한, 사법부 독립이란 사법부의 활동, 특히 재판에 대한 외부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것인데, 현재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결론을 정해 놓고 압력을 가하는 듯한 문 대통령의 발언은 사법부 독립 침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 대통령과 김 대법원장의 태도를 보면서 연상되는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관계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청와대를 찾아가서 상고법원 설치에 대해 협조를 구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관계가 대등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문 대통령과 김 대법원장은 공식 석상에서의 발언과 행동을 통해 이를 국민 앞에 그대로 보여준 셈이다.

재판 거래 또는 사법 농단 의혹이 문제 되고 있는 박 전 대통령과 양 전 대법원장의 관계와, 그런 문제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문 대통령과 김 대법원장의 관계는 성질상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입법·행정·사법의 삼권분립을 통해 삼권의 대등성이 요구되는 것은, 삼권 중 어느 하나가 독선과 독재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여당을 통해 국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나아가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에 대해서까지 우월적 지위를 갖게 된다면 그것이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점에서 문 대통령과 김 대법원장의 관계도 문제가 있다.

둘째, 사법의 본질은 공정한 재판이며, 이를 위해 사법부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요구된다. 민주국가에서도 국민 다수의 여론에 의한 재판이 금지되는 것은 소수자의 인권을 위한 것이며, 사법부는 이를 위한 최후 보루로 인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과 김 대법원장의 태도는 사법부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의심케 한다.

셋째,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우열관계에 놓이고, 그로 인해 사법부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약화할 경우에는 반드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지난 70년 동안의 사법부 역사가 보여주듯이 정권과 거리를 두지 못한 사법부는 공정한 재판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진정한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은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사법부에 대한 인사권부터 축소해야 하며, 사법개혁에 정치권이 개입하는 것은 예외 중의 예외가 돼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