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위치한 조지워싱턴대 학생들이 학교 내에 만들어진 농장 ‘Gro-W’에서 농작물을 돌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캡처

- 대학생들 ‘농작물 재배’ 바람

조지워싱턴·세인트메리大 등
美전역 대학으로 급속히 확산
등록된 농장수만 308개 달해

피망·양배추·아스파라거스…
다양한 종류 채소·과일 키워

찜통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8월 말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위치한 명문 조지워싱턴대 학생 20여 명은 학교 인근 한 도로 옆에서 손으로 땅을 파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들이 뙤약볕 밑에서 일하는 곳은 다름 아닌 조지워싱턴대 내에 만들어진 자원봉사 농장이었다. 6일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현지언론에 따르면 최근 미국 대학교 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농작물을 키우는 소규모 농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 수도 한복판에 위치한 조지워싱턴대의 학생 농장 ‘Gro-W’는 나무 펜스로 둘러싸인 블록(도로로 나뉘는 구역) 절반 정도 크기로, 학생들이 키우는 농작물로 가득하다.

농장에서 키우는 작물은 근대와 피망, 할라페뇨, 토마토, 양배추, 가지, 아욱, 파슬리, 고수, 호박 등 채소는 물론 사과, 복숭아, 배, 무화과 등 과일도 있다.

조지워싱턴대에서 국제관계학과 경제학을 전공하는 4학년 이바나 페르로스(여·21)도 자원봉사로 농작물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오하이오주의 농장에서 자란 그는 “농작물 주변에 있고 싶었다”며 “내 대학 마지막 해를 전문대학원 문제로 고민하며 보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미네소타주 위노나에 있는 세인트메리대 학생들도 이날 지난 3월 심은 가지를 수확하느라 한창이었다. 이 대학 역시 최근 학교 농장을 만들어 농작물을 키우고 있다. 학생들은 1주일에 10시간 정도를 투자해 농작물을 돌본다. 이들이 키우는 작물은 감자와 토마토, 양파, 비트, 아스파라거스, 가지 등이다. 최근에는 45파운드(약 20.4㎏) 정도의 비트와 케일, 감자를 수확했다.

조지워싱턴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농작물을 키우는 농장을 만든 건 지난 2009년이었고 세인트메리대에 농장이 만들어진 것은 지난해다. WP에 따르면 미국 대학생들이 시간을 쪼개 스스로 농장을 만들고 농작물을 키우는 일은 10여 년 전부터 급증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대학 내 농장 설립 움직임이 있었지만 숫자가 미미했던 데 반해 2005년부터는 미국 전역으로 이런 움직임이 확산됐다. 농업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에는 대형농장이 세워지기도 했고 조지워싱턴대처럼 도심 내 대학에서는 자투리 공간에 소규모의 농장이 만들어졌다. 2010년 이후 미국 고등교육지속성향상협회(AASHE)에 신고된 대학 내 농장은 308개에 달하지만 국가등록통계가 없는 만큼 이 숫자는 실제 농장 숫자의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WP는 전했다.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농장을 세우고 농작물을 키우는 일이 늘어나는 것은 개인적 향수 달래기에서부터 환경보호, 불우이웃돕기 등 사회적 문제 해결까지 여러 이유가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레슬리 두람 사우던 일리노이대 교수는 “학생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글로벌 환경문제와 기후변화를 느끼고 있지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며 “대학 농장은 환경문제에 대한 그들의 고민을 발산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골에서 자라 도시에 있는 대학으로 온 학생들은 농작물을 키우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도 한다.

또 학생들은 스스로 키운 농작물을 통해 노숙자 등 불우이웃을 도움으로써 사회문제 해결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실제 조지워싱턴대 농장에서 나온 농작물 대부분은 노숙자들의 식사를 제공하는 미리암 키친에 기부된다. 매주 월요일 학생들은 수레에 수확한 농작물을 담아 미리암 키친 측에 전달한다.

도시 주변에 집을 구해 노숙 생활을 벗어난 이들에게 신선한 채소, 과일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세인트메리대 학생들이 키운 농작물 역시 한 달에 한 번씩 인근 저소득 가정에 무료 제공된다.

조지워싱턴대 1학년 캐서린 투메이(여·18)는 WP와의 인터뷰에서 대학 농장 자원봉사에 나선 이유에 대해 “작은 캠퍼스가 아닌 도시 전체를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며 “워싱턴DC에서 노숙이 문제라는 점을 알았고 집 없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 = 김석 특파원 su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