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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위원

“베토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당당히 이기고, 도전하며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그의 음악은 영혼의 세계와 만날 수 있게 해준다. 내 음악 인생과 음악관(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베토벤을 연주하면, 피아니스트들은 대개 발가벗겨진다.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작곡가다. 극도의 좌절감과 희망·환희 등을 한꺼번에 품고 있는 곡의 밀도 높은 구조까지 이해해야 한다.” 화려한 기교, 카리스마 넘치는 호쾌한 타건(打鍵), 심오하면서 미묘한 서정(抒情)의 표현 등으로 가슴을 파고드는 감동을 준다고 해서 ‘건반 위의 암사자 또는 백곰’으로도 불리는 피아니스트 백혜선(53)이 한 말이다.

나이 4세 때 피아노를 익히기 시작한 뒤, 서울 예원학교 2학년을 마치고 미국 유학을 갔던 그는 요절한 천재 피아니스트 윌리엄 카펠을 기리는 국제 콩쿠르에서 1989년 우승한 것이 세계 무대 데뷔의 계기였다. 그 특전으로 그해에 뉴욕 링컨센터 독주회를 열었다. 1994년 러시아 차이콥스키콩쿠르에서는 1위 없는 3위를 차지해, 앞서 출전했던 영국의 1990년 리즈콩쿠르와 1991년 퀸 엘리자베스콩쿠르에 이어 세계 3대 콩쿠르 모두 상위 입상한 한국 최초의 피아니스트가 됐다. 그 일로 1994년 29세 나이에 최연소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되기도 한 그에겐 세계 각지의 연주회마다 예외 없이 극찬이 따랐다. 서울대를 2005년 사직하고 미국으로 다시 간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현존하는 세계 100대 피아니스트’에 선정되기도 한 그의 연주를 두고, 미국의 저명한 음악평론가 도널드 아이슬러는 이렇게도 말했다. “열정과 섬세함을 동시에 갖춘 백혜선은 악보의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부터 가장 하찮은 음에 이르기까지 음악에 담긴 드라마의 모든 것을 드러낸다.”

2019년에 세계 무대 데뷔 30주년을 맞는 그가 베토벤 소나타와 협주곡 전곡(全曲)에 도전하는 기념 연주회를 2년 반 예정으로 지난 3월 시작했다. 4회째이면서 올해엔 마지막인 무대가 오는 1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마련된다. 지나온 궤적을 돌아보며 “혼자 광야에 있는 것 같은 고독과 외로움이 있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는 그가 베토벤 음악을 통해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가 감동적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