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꽃보다 할배’. ‘꽃할배’들이 배낭여행을 하면서 겪는 자잘한 이야기를 담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다. 제목이 신선하고 정감이 넘친다. 어두운 노년을 ‘꽃’에 비유하고, 엄숙한 노인의 이미지를 방언형 ‘할배’로 누그러뜨린 점은 남다른 안목이다.

‘할배’는 ‘할아버지’를 뜻하는 경상도 말이다. 현재 표준어에는 이에 대응하는 말이 없으나, 근대국어에서만 해도 ‘할바’라는 단어가 쓰였다. 지금도 역사극에서 종종 듣게 되는 궁중 용어 ‘할바마마’의 ‘할바’가 바로 그것이다.

‘할바’는 중세국어에서는 ‘한아바’였다. 이는 ‘하다(大)’의 관형사형 ‘한’과 ‘부(父)’에 대한 평칭의 호칭어 ‘아바(아빠)’가 결합된 어형이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보다 한 세대 위의 인물이기에 ‘아바’에 ‘대(大)’의 ‘한’을 붙여 그것과 변별한 것이다. 중세국어에는 ‘조부(祖父)’와 관련된 친족어휘로 ‘한아바’ 이외에 ‘한아비’와 ‘한아바님’도 있었다. ‘한아바’와 ‘한아비’는 평칭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전자는 호칭어이고 후자는 지칭어라는 점에서 다르다. ‘한아바님’은 존칭형으로서 호칭과 지칭 기능을 모두 갖고 있었다. ‘한아비’는 ‘할아비’로, ‘한아바님’은 ‘할아버님’으로 변해 지금에 이른다.

한편 ‘한아바’는 ‘할바’로 변해 근대국어까지 쓰이다가 소실됐다. ‘할바’의 말음절에 ‘ㅣ’가 첨가된 어형이 ‘할배’인데, 이런 변화는 같은 방언권에서 ‘父’의 ‘아바’가 ‘아배’로, ‘모(母)’의 ‘어마’가 ‘어매’로, ‘조모(祖母)’의 ‘할마’가 ‘할매’로 변한 것과 같다. 이들 가운데 ‘아바’와 ‘어마’는 ‘아빠’와 ‘엄마’로 변해 살아 있는 반면 ‘할바’와 ‘할마’는 방언에만 흔적을 남긴 채 사라졌다. ‘할바’는 근대국어 이후에 등장한 ‘한아바지(할아버지)’에, ‘할마’는 존칭형 ‘할마님(할머님)’에서 변형된 평칭형 ‘할마니(할머니)’에 밀려난 것이다.

충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