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기동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24일 서울 종로구 동인문화원에서 유학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사서삼경 국내 최초로 완역한 유학자 이기동 명예교수

공자 가르침 가장필요한 사람은
자신이 돼지인지 모르는 정치인
남 약점 들추지말고 염치있어야

배움 따로, 삶 따로가 된 세상
지식 버려야 진리에 가까워져

‘내 본질은 하늘과 같은 존재’
유학사상, 우리정서 잘맞는데
‘하늘님’ 얘기하면 배척 받아

뿌리 되찾고 공동체 회복위해
한국인, 다시 유학 배워야할때

“저를 ‘국내 최고의 유학자’라고 봐주시는 건 일반인들이죠. 학계 관점에서 보면 안 통할 겁니다.”

24일 서울 종로구 한 작은 건물 4층에 있는 동인문화원에서 만난 이기동(67)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국내 최고의 유학자’로 손꼽힌다.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지나가는 날 다소 궂은 날씨를 뚫고 도착한 그의 사무실은 15평 남짓한 낡은 공간이었다. 국내 최고라는 칭송에 반백(半白)의 노학자는 손사래를 치며 이같이 답했다.

자신이 최고인지 잘 모르겠다는 이 교수는 그러나 2007년 사서삼경(논어·맹자·대학·중용의 4서 및 주역·시경·서경의 3경)을 완역한 국내 최초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사서삼경의 원문을 번역하고 해설을 다는 작업을 1987년부터 장장 20년에 걸쳐 홀로 해냈다. 당시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사서삼경을 완역하고 해설을 붙이는 작업은 주자조차 끝을 보지 못했다”며 “아마 역사상 최초의 성과일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주자도 서경에 주를 다는 작업을 마치지 못했다고 하니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한데 겸양이 더 커진 모양이다.

이 교수는 1951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조선 시대 영남학파를 낳았던 지리적인 환경이 그를 유학자의 길로 이끌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들었던 유학에 관한 짤막한 가르침들이 잠재의식에 남아 나를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다”면서도 “사실은 그야말로 성적에 맞춰 장학금을 많이 준다고 알려진 유학과를 택했다”고 ‘비화’를 밝혔다. 이 교수는 “고교 비평준화였던 당시에는 지방 출신들이 서울로 유학을 떠났는데, 나는 서울 경복고에 합격해 상경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고교 시절 내내 적응을 하지 못해 폐인처럼 살았다”고 회고했다. 이 교수는 “자연히 대학 입시에서 1차 서울대는 떨어지고 2차로 성균관대를 가게 됐고, ‘어차피 서울대가 아닌 바에야 아무 과나 들어가자’는 생각에 유학과를 선택했던 게 내 운명을 바꿔놨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스무 살 넘어 제대로 접한 유학에 그야말로 매료됐다. 유학이 한국 사람의 심성을 그대로 정리해놓은 학문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 교수는 “고교 시절과는 다르게 학부생 시절 배움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더라”면서 “아무래도 유학이 한국 사람의 정서와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유학의 발원지가 한국이라고 주장한다. 공자 사상의 핵심은 인(仁)인데, 옛날 사전을 찾아보면 우리 민족을 가리키는 동이(東夷)의 이(夷)가 곧 인이라는 설명이다. 또 맹자와 시경 등에는 중국 어순이 아닌 우리나라 어순으로 읽어야 뜻을 풀 수 있는 구절이 많다고도 했다.

너무도 닮았기 때문일까. 그 어떤 문화라도 한국에 들어오면 유학적으로 변한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네가 인간이냐’ ‘인간 좀 돼라’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면서 “서양은 인간의 기준을 얼굴·몸 등 신체로 보지만,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마음을 기준으로 짐승과 인간을 구별해왔다”고 봤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은 게 ‘동굴’이다. 단군신화에서는 곰이 동굴에 들어가 마늘과 쑥만 먹으며 인간의 마음을 되찾아 인간이 돼 나온다.

이 교수는 “동굴에서 인간이 돼가는 패턴과 정서가 예를 들면 우리나라 교회에서도 발현된다. 한국 교회는 중국·일본 교회와는 또 다르다”면서 “참된 인간의 마음을 되찾기 위해 성령을 접하고 구원을 받으려고 동굴 같은 기도원을 만든다. 한국 사람들은 교회도 유학적으로 다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사람은 동굴 같은 찜질방, 노래방 참 좋아하지 않나요.” 이 교수가 진지한 설명 중에 덧붙인 농담이다.

한민족 특유의 정서인 ‘한(恨)’도 이 교수 설명대로면 유학적 사상 탓에 생겨났다. “우리나라는 아줌마한테 아줌마라고 불러도 화를 냅니다. 사모님이라고 해줘야 하죠. 이는 하늘과 내가 곧 하나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에서 비롯됐습니다. 여자는 공주고 남자는 왕자, 즉 나의 본질은 하늘 같은 존재인데 현실적으로 잘못돼서 잠깐 초라해졌다고 보는 겁니다. 우리나라 전통 가옥도 하늘을 향해 되돌아가는 한풀이의 깊은 과정입니다. 전통 한옥 용마루를 보면 끝부분이 다시 하늘로 솟고, 처마도 하늘을 향해 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하늘과 같은 본래의 모습으로 발현되지 못했다는 한(恨). 이 교수는 “우리 민족은 그 한을 풀기 위해, 초라한 현재의 나를 잊기 위해 음주와 가무에 능통해진 것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종교와 학문의 가르침을 좇는다”고 역설했다.

유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큰 것도 사실이라 노 교수에게 물었다. 조선 시대 당파 싸움과 망국의 길에 대한 평가가 궁금해서였다. 이 교수는 “조선 유학의 일면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된 한글이 세종대왕의 유학자적인 마음에서 창제됐듯, 나라를 흥하게 한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 있었다. 모든 건 교조화됐을 때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학을 옹호하면서도, 유학이 부정되는 현실은 근대의 출발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서양의 근세는 기독교를 극복해서 나온 시대입니다. 기독교 시대 하느님의 가르침에서는 사랑으로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봤습니다. 그런데 신을 부정하고 나니 그럼 ‘신을 믿었던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봉착합니다. 생각을 거듭하죠. 그러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대명제를 탄생시킵니다. 남과 구분된 오롯한 나를 인식하기 시작하자 남을 이길 방법, 내가 다치지 않을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발전한 학문이 법학, 경제·경영학, 기술학 등이죠.”

우리나라도 서양과 마찬가지 흐름을 보인다. 전통사상인 유학을 부정하고, 그 빈자리를 서양의 근대 학문으로 채웠다. 이제 한국인들도 남과 경쟁해서 이기기 위해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이 교수는 “이런 시대에서 다시 유학, 우리의 뿌리를 얘기하면 ‘때가 어느 땐데 아직도 하늘님 얘기냐’는 핀잔을 받게 된다”며 아쉬워했다. 이 교수는 “그래서 신학의 돈으로 만들어진 대학들에만 신학과가 있고, 유학의 돈으로 만들어진 성균관대에만 유학과가 겨우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각종 논문이나 학회 등 서양 학문적인 틀을 갖췄을 때만 그나마 정통 유학 대접을 받는 현실을 한탄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한국 사람들이 이제 다시 유학의 가르침을 새겨들어야 할 때라고 목청을 높였다. 유학을 통해 뿌리를 되찾고, 한마음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원래 나는 곧 하늘이고 우리는 곧 하늘이라는 유학의 큰 뿌리 아래서 공동체 의식이 발현됐는데, 이게 부정당한 채 각자도생하며 오늘을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닐 겁니다. 유학 정신을 되살려야 할 때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지식 습득에만 혈안이 돼 있는데 배운다는 건 머리를 통해서겠지만, 산다는 건 가슴으로 하는 일입니다. 이렇다 보니 배운 거 따로, 사는 거 따로인 세상이 됐죠. 그러나 공자, 맹자는 지식을 버릴 것을 강조합니다. 지식이라는 고정관념에 얽매일 게 아니라, 어떤 일을 해야 할 상황에서 하는 중용의 덕목을 깊이 새겨야 가슴 속 진리에 가까워집니다.”

유학의 가르침이 가장 절실한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는 비판과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 교수는 “요즘 정치판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의 집약체로 보인다”면서 “원래 돼지 눈에는 부처님도 돼지로 보인다고들 하는데 실상은 본인이 돼지일지도 모른다는 걸 하루빨리 깨우쳐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정치의 정(政)은 바를 정(正)에 채찍질, 지휘봉 부수로 이뤄져 있다”며 “동양적 관점에서 정치란 바른 곳으로 인도해가는 것이란 뜻”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돼지가 정치할 순 없고, 참된 인간, 즉 성인이 정치해야 한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대로 조선 시대에는 왕이 성왕이 아닐 경우 두 가지 방법을 썼다. 쫓아내고 새로운 성인을 추대하는 방법과 현재 있는 왕을 성인으로 공부시키는 방법이다. 조선의 왕들이 경연(經筵)을 해야 했던 이유다.

“내가 지방 중소기업 등에 유학 강연을 가면 그 지역 유지들이 수백 명 모입니다. 국회의원들이 꼭 오기 마련이죠. 와서 악수하고 눈도장을 찍습니다. 그리고 강의가 시작되면 가버립니다. 이게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현실입니다. 공부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표 관리만 하는 정치인들이죠. 유학을 배워 참된 인간이 되면, 내로남불이 아니라 내불남로의 정신으로 정치할 수 있을 겁니다. 누가 만약 저를 정치토크 진행자로 초청해준다면, 정치인들에게 한번 이런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논어에 남의 약점을 들추면 소인이요, 남의 좋은 점을 드러내면 군자라고 하는데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라고요.”

이 교수는 “정치인들은 염치가 있어야 한다”면서도 “하기야 염치가 있는 분들은 정치판에서 못 배기는 것 같긴 하다”고 뼈 아픈 현실을 지적했다. 고희(古稀)를 향해가는 그지만, 아직 쉴 틈이 없다고 한다. 이 교수는 “진짜 동굴 같은 곳에서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는 ‘21일 프로젝트(단군신화에서 곰이 인간이 된 기간)’를 운영하는 등 여러 가지 계획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