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도운 논설위원

여론 조작, 민주 정치 흔들어
광범위하고 일상적인 현상 돼
드루킹 특검, 큰 성과 없이 끝나

네이버 업무방해가 主혐의?
특검, 27일 수사 결과 발표
법 체계 개선 필요도 밝혀야

민주 정치는 여론(輿論)정치다. 국민 각자가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면 찬반 의견이 뒤섞이며 일정한 방향성을 갖게 된다. 그것이 건전한 공론 형성 과정이고, 우리 헌법이 규정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해가는 힘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이런 프로세스는 심각하게 왜곡돼가고 있고,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드루킹’ 사건이다.

드루킹 사건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지난해 5·9 대선에서 댓글 작성과 조회 수 올리기 등을 통한 불법적인 여론 조작이 있었는가. 둘째, 그 과정에 김경수 경남지사 등 여권 인사들이 관여했는가. 셋째, 지난해 5월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진 검찰과 경찰의 드루킹 사건 수사에 권력의 개입이 있었는가. 지난 6월 27일 시작된 허익범 특검팀은 세 가지 핵심 의혹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채 25일 수사를 마무리한다. 허 특검은 지난 13번의 특검 가운데 처음으로 수사 기간 연장을 요청하지 않았다. ‘실패한 특검’ ‘의지 없는 수사’라는 평가도 쏟아진다.

애초부터 한계를 안고 시작한 특검이긴 했다. 특검 자체를 인선하기 힘들었다. 거론되는 후보마다 손사래를 쳤다. 특검은 대체로 검찰과 경찰의 사전 수사 내용을 토대로 수사하는데, 드루킹 관련 사건에 대한 검경의 수사는 은폐 의혹이 불거질 정도로 부실했다. 드루킹 일당의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여론 조작 활동은 이미 선거법 공소시효(6개월)도 지났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 임기 초반, 지지율이 높은 상황에서 ‘정권 실세’를 상대로 수사를 벌이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놓고 특검과 법원이 압력을 느낄 만한 발언을 쏟아냈다. 언론 지형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특검팀 내부도 흔들렸다.

그런데 특검팀이 만들어낼 수 있었던 최선의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여론 조작 주범 드루킹과 공범 둘리·솔본아르타·서유기는 모두 특검 출범 전 경찰 조사 과정에서 구속됐는데, 주 혐의는 댓글 조작 프로그램 ‘킹크랩’을 이용해 네이버의 컴퓨터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특검팀은 김 지사도 드루킹과 공모해 네이버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이 발부됐으면 성공한 특검이 됐을까.

네이버 업무 방해? 인터넷 트래픽이 네이버에 집중돼 있긴 하다. 그래서 과도한 집중의 강제적 완화 방안이나, ‘아웃링크’ 같은 보완책도 거론된다. 그러나 대한민국 공론의 장을 뒤흔든 중대 범죄 행위를 일개 사기업 업무 방해로 처벌한다는 것은 국민의 법 감정과 거리가 있다. 드루킹 일당 재판에서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은 작다고 법조인들은 전망한다. 김 지사가 기소돼 재판을 받더라도 업무 방해 혐의로는 선고유예나 벌금 정도의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수행비서였던 김지은 씨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은 큰 충격을 던졌다. 안 전 지사는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재판부는 상대방이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성관계를 한 경우 강간으로 처벌하는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이나 상대방에게 명백한 동의를 얻지 않은 성관계는 모두 강간이라는 ‘예스 민스 예스 룰(Yes Means Yes Rule)’이 입법화되지 않은 현행 법체계에서는 안 전 지사 행위를 처벌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자 관련법 개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안 전 지사 사건의 사회적 효과다.

여론 조작은, 죄는 크지만 업무 방해 말고는 마땅히 죄를 물을 만한 법 규정이 없다. 공직선거법에 허위사실 공표 처벌 조항이 있지만, 여론 조작에 허위 댓글만 동원되는 것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지만, 이런 여론 조작은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일부 후보는 드루킹 일당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민주당도 국정원·기무사 댓글 사건 피해자라고 주장해왔다. 여야가 뜻을 모아 여론조작처벌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여론 조작은 선거 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주식 시장, 서적 판매, 음악 스트리밍, 맛집 추천까지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한 여론 조작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특검은 27일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여론 조작 처벌과 관련한 법체계 개정의 필요성을 지적해준다면 특별법 제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수사 결과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특검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