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의 임기가 오는 12월로 끝나 곧 연임될지, 바뀔지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광주 등 4곳 관장 없어
대전·경기도도 곧 교체 유력

정치바람 타고 코드인사 횡행
자리이동 너무 잦아 성과못내

수집·보존·조사·연구 못해
장기적 프로젝트 거의 불가능

‘대한민국 미술관’호(號)가 선장을 잃고 표류할 처지에 몰렸다.

우선 국공립미술관을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스페인 출신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이 오는 12월 3년 임기의 끝을 앞두고 있다.

그는 부임 이후 미술계나 문화계로부터 비판을 받아 왔다. ‘외국인이라는 한계로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 첫 번째다. 그렇다면 해외에서 영입한 관장답게 세계적인 미술관들과의 글로벌 교류에 성과를 냈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했다. 그의 연임에 대해 미술관계자들이 반신반의하는 이유다.

대구시립, 광주시립, 제주도립,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등은 아예 현재 관장 자리가 공석이다. 대전시립과 경기도립은 전임 지자체장이 임명한 터라 새로운 단체장이 교체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전북 도립의 경우 연말이 임기인데 임명권자인 도지사가 연임하면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렇게 동시 공석 사태가 발생한 것은 관장 임기가 2년인데 다가올 지자체 선거로 단체장이 바뀌면 낙하산, 코드인사 등으로 중도 하차할 것을 우려해 미술전문가들이 관장 공모 등을 꺼렸기 때문이다.

미술관이 정치바람을 타는 건 울산시립미술관 사태에서도 익히 알 수 있다. 울산시는 지난 2010년부터 미술관 건립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지난 6월 지방선거로 지자체장이 바뀌며 ‘미술관에 민선 7기 시정철학을 담아야 한다’는 이유로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혀 미술계와 관련자들을 당혹하게 했다. 특히 충격적인 사실은 미술관을 “시정철학을 담는 그릇”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장들의 잦은 자리이동도 문제다. 지난 2016년 9월 24일 개관한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초대 관장이 임기를 10개월 남겨놓고 2017년 10월 돌연 부산시립미술관장에 선임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미술관의 본래 기능은 ‘전시’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오해다.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수집과 보존’이다. 두 번째가 ‘조사와 연구’다. ‘전시’는 그다음이다. 전시도 최소한 2~3년 전부터 기획돼야 하지만 1년 단위로 끊어서 할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러나 수집과 보존, 조사와 연구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다. 적어도 4~5년, 길게는 1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한 작업들로 미술관의 정체성, 설립목표를 가시화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관장의 임기를 보면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3년, 공립미술관은 2년 임기제로 돼 있다. 5년까지 연임이 가능하다고 하나 임기를 채운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파리목숨’에 빗대기도 한다. 지자체들은 세계적인 미술관을 원하면서 짧은 임기에 쥐꼬리만 한 소장품구입비, 눈곱만 한 전시예산만을 지원하고 있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관장이라도 ‘실력 발휘’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씨는 “현재 대한민국에는 국가와 지자체가 설립해 운영하는 박물관이 388개 관, 미술관이 57개소에 이르지만, 이들 미술관 중 변변한 소장품은커녕 예산도 부족해 건물만 가지고 개관 이래 의미 있는 전시조차 한 번 못한 곳이 수두룩하다”며 “정치적 성향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그나마 임기조차 짧은 미술관장의 처지와 그 같은 현실이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그나마 공립미술관 57개 중 10여 개 관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미술관 관장은 행정직 공무원이 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최근 광주시는 시립미술관장 공모를 하며 “광주시립미술관장 임명에 낙하산 인사는 없다”며 “광주시립미술관장에 연고주의를 배제한 최고의 미술관 전문경영인을 임명하겠다”고 발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글·사진=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