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970년대 가족계획 포스터(왼쪽)와 마을 주민에게 피임법을 설명하는 가족계획 계몽원(오른쪽). 저자는 “2000년대 이후 전개된 출산장려 정책은 1960∼1970년대 산아제한 및 가족계획사업과 정반대의 방향인 것처럼 보이지만 인구 개념을 통치와 과학의 결합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동일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창비 제공

- 가족과 통치 / 조은주 지음 / 창비

1960~1970년대 가족계획사업
사적 영역인 출산에 국가 개입
삶 변화시킨 근대화 프로젝트
국민을 감시 시스템으로 포섭

섹슈얼리티와 출산 기술적 분리
개방적 性의식 보급은 진보적
논의 1960년대 머물러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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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금 수령 나이를 늘리는 국민연금 개선안으로 여론이 급속히 악화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사회적 합의 없이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해명이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불안이 연금 문제에서 폭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갈수록 출산율이 감소해 ‘인구 절벽’ ‘국가 부도’ 같은 담론이 불거지는데도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렇다면 국가는 ‘인구’ 문제를 어떻게 다룰까. 인구는 통계와 과학의 얼굴로 나타나지만 실은 정치의 문제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출산을 우려하는 지금과 달리, 50여 년 전에는 그 양상이 정확히 반대였다. 아마도 40~50대 이상 중년층은 어렸을 적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구호가 기억날 것이다.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포스터.

1960년대 초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6.3명. 지난해 합계출산율 1.05명의 6배였다. 2차 세계대전 후 빈곤에 빠진 ‘제3세계’가 그렇듯 한국도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성장을 도모했고, 이 바탕엔 사람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이내 인구 과밀 문제에 부딪혔다. 정부는 산아제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1972년엔 산아제한을 위한 임신중절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30년이 지나지 않아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자는 가족이 국가 통치의 모델에서 도구로 전환되는 계기를 발견했다. 바로 1960∼1970년대 박정희 정부 시절의 ‘가족계획사업’이다.

저자에 따르면 가족계획사업은 단순한 저출산 대책을 넘어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종의 근대화 프로젝트였다. 국가는 가족의 지극히 사적 영역인 임신과 출산에 개입해 통치를 실천했다. 인구 문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맥락과 국가 발전 정도에 따라 통치의 도구로 활용됐던 것이다.

박정희 정부 때 산아제한은 일상이었다. 1961년 10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산아제한을 위한 계획은 강제성을 띤 입법으로 할 게 아니라 국민운동을 통한 계몽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피임술을 보급하기 위해 정장 차림의 가족계획 계몽원이 전국의 읍·면 단위로 배치됐고, 텔레비전에서 피임술 광고가 방영됐다. 군부 독재라는 전제에서 보면, 가족계획사업을 통해 정부가 국민을 국가감시시스템 안으로 포섭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가족계획사업이 국가의 통치화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과정이었음에 주목한다. 미셸 푸코의 ‘통치성’ 논의를 바탕으로 저자는 사람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일하고 소비하는 모든 과정이 인구의 통치라는 차원에서 정치권력의 장에 도입됐으며, 이를 유도한 게 박정희 정부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저자는 “1960년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의 직접적인 기원”이라는 지적을 옹호한다.

저자는 기존에 여러 연구가 가족계획사업을 통해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국가 발전을 위해 통제의 대상이 됐다고 평가하는 데 반해, 가족계획사업이 피임술의 보급을 통해 섹슈얼리티와 재생산을 기술적으로 분리했을 뿐만 아니라 성의 쾌락적 요소를 전파하면서 성행위를 생식의 목적과 분리된 ‘사랑의 실천’이라는 차원에서 의미화했다고 분석했다. 개방적 성의식과 여성의 주체적 욕망을 강조하는 부분은 지금의 시선으로 봐도 진보적인 측면이 있다.

국가와 인구, 여성의 주체화 등에 대한 정부 정책이 세대를 넘어 판이해지는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개인의 삶이라는 미시적 관점과 국가의 통치라는 거시적 관점을 넘나들며 빼어난 통찰력을 보여준다. 다만 논의의 영역이 1960~1970년대에만 머물러 있고, 가족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과제로만 남겨둬 아쉽다. 376쪽, 1만80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