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다치바나 다카시는 우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기록으로 남겨 놓는 것은 인간과 세계의, 거대한 기억망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기억의 일부로 살아가고, 기록을 남긴다. 자료사진

-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바다출판사

세계는 만물의 집합체이며
인간의 기억이 연결된 場
누구든 죽으면 기억서 소멸
그렇기 때문에 글로 남겨야

개인 역사는 동시대 사회史
‘자서전’과는 또 다른 개념
희로애락 담은 개인사 아닌
시대의 흐름 투영시켜야

시간따라 계속 변하는 인생
‘자기 삶의 연표 만들기’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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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방대한 지식의 세계를 선보여 ‘지(知)의 거인’으로 불리는 일본의 르네상스적 지식인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는 ‘개인의 역사가 곧 세계사’라고 한다. 그 근거로 그가 제시하는 것은 ‘세계 기억의 네트워크’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과 기억이 모이고 서로 연결돼 만들어진 거대한 세계의 기억 네트워크다.

“세계는 만물의 집합체인 동시에 동시대를 구성하는 많은 인간이 공유하는 장대한 기억의 네트워크다. 세계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장대한 전 인류적 기억의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따라서 한 인간이 죽으면 그 사람의 뇌가 담당하고 있던, 기억 네트워크의 해당 부분이 소멸해, 한 인간 몫만큼의 구멍이 생긴다. 이 기억 네트워크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다카시의 ‘세계 기억 네트워크’에 따르면 인간은 죽으면 그 개인의 기억이 사라질 뿐 아니라 그 사람의 기억과 이어져 있던 기억 네트워크의 해당 부분이 빠져나간다. 한 사람의 소멸 전후로, 거대한 기억 네트워크 모양은 같을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세계 기억망에 다시는 메워지지 않는 구멍을 남긴다. 사람에 따라 그 구멍이 상대적으로 클 수도 있고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다카시는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또 세계를 위해 자기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사를 쥐고 흔든 위대한 역사적 인물뿐 아니라, 깊은 시골에서 태어나 평생 그 마을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사람, 우리 시대의 평범함의 기준에도 못 미치는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똑같이 적용되는 ‘룰’이다.

세계의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거시적인 시각을 가지고 역사의 큰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역사의 실상을 들여다볼 수 없다. 미시적인 부분에 눈을 돌려, 그 시대를 구성하고 있던 민족의 전 구성원 개개인의 생각까지 포함한 자기 역사의 집합체로서 역사를 다룰 때, 비로소 진정한 민족의 역사가 된다는 것이다. 즉 어떤 민족의 역사도 미시적으로 살펴보면, 민족 구성원이 가진 자기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자신의 기억을 남겨놓는 것,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 흔한 말로 표현하면 자서전이다. 하지만 다카시는 자서전이라는 말 대신 ‘개인의 역사’라는 말을 쓴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단순히 자기 역사의 성공 과정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의 역사를 쓰는 것은 개인적인 의미를 떠나 집합체로서의 동시대 민족사가 된다.

따라서 그는 각 개인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개인사 서술을 넘어 개인이 살아온 시대의 역사를 반영하고, 역사적 사건에 눈을 돌려, 그 역사 속에 자신 삶을, 자기 삶 속에 그 역사를 투영해 보는 작업을 제안한다. 개인사는 각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그가 살아온 시대의 역사적 흐름을 반영하는 ‘사회사’가 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이 책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작업을 위한 가이드 라인이다. 책은 저자가 ‘릿쿄(立敎) 세컨드 스테이지대’에 개설한 강좌 ‘현대사 속의 자기 역사’를 정리한 것이다. 이 대학은 릿쿄대가 2008년 시작한 시니어 세대를 위한 독특한 교육과정으로 입학 자격이 50세 이상이다. 실제 강의 제목은 ‘자기 역사를 쓰는 방법’이지만, 단순한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가 아니라 말한 내용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강의다.

저자는 누구나 인생의 어떤 지점에 멈춰 자기 삶을 돌아보곤 하지만 인생 60세 정도가 되면 사람들은 자기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한다. ‘세컨드 스테이지’, 즉 삶의 두 번째 무대를 다시 디자인하는 데는 무엇보다 자신의 퍼스트 스테이지, 즉 첫 번째 삶을 면밀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한다. 이때 그저 “내 인생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커다란 물음을 던진다고 해도 질문 자체가 추상적이고 애매하면 간단하게 답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책에서는 이처럼 자기 역사를 쓰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현실적인 도움을 준다. 그중 인상적인 동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언이 ‘자기 삶의 연표 만들기’다. 자기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직조됐는지 알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전체를 파악하는 콘티를 만들라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 인생을 구성하는 일련의 사상적 흐름. 이것이 바로 자기 역사 연표다. 연표의 기본적인 형식은 연 단위 시간 축에 맞춰 그해에 일어난 일을 순차적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여기서 고려해야 하는 것은 “내용을 각각 달리한, 시간 축을 몇 개나 나열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이는 자신의 삶, 자신의 역사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돌아봐야 비로소 떠오르는 것이다. ‘나의 삶은 어떤 구조로 이뤄져 있을까.’ 바로 이에 대한 대답이다.

이처럼 개인의 역사는 곧 세계의 역사지만, 여전한 진실은 결국 개인의 역사는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역사 쓰기는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오늘 쓴 자기 역사와 내일 쓴 자기 역사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고, 변한 내가 돌아보는 나의 역사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변하기 때문이다.

한편 책에는 다카시의 강의에 참여해 자신의 ‘개인 역사’를 쓴 숱한 사람의 사례가 들어 있다. 이 자체가 또 하나의 거대한 기억의 네트워크인 셈이다. 이와 함께 언제나 철저한 취재와 탁월한 분석으로 폭넓은 글쓰기 세계를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다카시의 글쓰기 노하우도 배울 수 있다. 예를 들어 “글을 길게 쓸 수 있는 가장 큰 비결”로 ‘단락 나누기’라고 조언한다. 312쪽, 1만 78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