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정여울 작가는 “아주 멀리 떠나야만 비로소 깨달아지는 생의 진실이 있다”고 했다. 해냄 제공

이미지 크게보기 김연수 작가는 여행이란 자신이 낯설어지는 경험이라고 했다. 신규철 제공

정여울 ·김연수, 여행 산문집 나란히 출간

여행은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많은 이가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때론 두 발로 걸어 먼 곳까지 떠나는 것일까. 그들은 길 위에서 무엇을, 누구를 만날까. 산문이 아름다운 김연수 작가와 ‘내가 사랑하는 유럽 top 10’으로 ‘여행 산문가’라는 이름이 붙여진 정여울 작가의 답은 명확하다. “여행은 낯선 자신을 만나며,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자란다는 것”이다. 두 작가의 여행 산문집이 나란히 나왔다. 김 작가의 ‘언젠가 아마도’(컬처그라퍼)와 정 작가의 ‘내성적인 여행자’(해냄)이다. 정 작가는 유럽의 36개 도시를 거닐며 보고 느낀 이야기를 담았고, 김 작가가 부산, 대구, 순천부터 몽골, 일본, 중국, 이란, 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등을 넘나들며 쓴 산문 58편을 묶었다. 단순한 여행 기록이 아니라, 그곳에서 떠오른 생각, 기억과 깨달음에 대한 깊은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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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여행이란 낯선 자신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어느 날 문득 “삼월의 찬 바람을 견디던 분홍색 벚꽃잎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던 교토의 나, 이층버스에 매달려 한여름의 하이드파크를 향해 ‘굿바이’라고 읊조리던 나, 해협을 건너던 배에서 갑자기 나타난 돌고래 떼에 시선을 빼앗겼던 나처럼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의 나’를 떠올릴 때가 있다고 했다. 지금 여기가 아닌 그때, 어딘가에 있던 ‘낯선 사람’이다. 그는 여행이란 자신이 그렇게 낯설어지는 경험이라며 “언젠가 아마도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다시 낯선 사람이 돼, 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할 것”이라고, “언젠가, 아마도, 누군가를 만나리라는 것. 그것이 자신의 여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행은 누군가를 만나는 일인 동시에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헤어지는 일을 배우는 것이라고도 했다. “여행이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친구처럼 지낸 이들과 또 아꼈으나 잃어버린 물건과도 아무런 미련 없이. 이젠 알겠다. 그렇게 해서 내가 삶의 원리를 배웠다는 사실을.”(28쪽)

한편 정여울 작가는 “왜 온갖 고생을 사서 이토록 멀리 자주 길을 떠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아주 멀리 떠나야만 비로소 깨달아지는 생의 진실이 있다. 반드시 떠나야만 보이는 것들을, 힘들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그는 걸핏하면 길을 잃어버리는 ‘길치’에 심한 내성적 성격이라는 여행에 방해가 되는 성향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걸핏하면 길을 잃어버리는 것 때문에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매번 신기해하고 같은 장소조차 새로이 아름답고, 눈부시다고 느끼는 축복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심하게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길을 잃어버리면 누군가에게 더듬더듬 길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기에 길 위에서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고도 했다. 결국 돌아보면, 그는 그 길 위에서 잃어버린 길들이 익숙한 길들보다, 정해진 것보다 우연히 만난 것들이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줬다고 했다. 이 가르침은 이런 생각으로 이어진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뻔하고 상투적인 길이 아니라 새롭고 싱그러우며 눈부시게 아름다운 길로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여행이 지닌 힘이었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도 내가 선택한 길들만이 아니라, 모든 잃어버린 길이 오늘의 나를 길러낸 또 하나의 힘이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