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내외 평가기관 난립
환자 편의성 등 치중 조사
준비에 매달려 진료 소홀

‘의료기관 평가인증, 환자 서비스 평가, 각종 브랜드 평가, 진료수익 평가, 민간 기관 인증….’

의료기관들이 받고 있는 각종 내·외부 평가들이 체계도 없이 난립하면서 오히려 진료의 질을 하락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경우 10일 92개 의료기관에 대한 의료서비스 환자 경험 평가 결과를 심평원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 외에도 의료의 질, 안전성, 환자만족도 등 각종 지표를 평가하는 조사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의료계에서는 “병원이 진료보다는 각종 평가준비에 매달리느라 더 바쁘다”는 불만이 나온다. 환자 안전 및 의료 질 향상이라는 평가의 본래 목적이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심평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조사결과는 환자가 직접 간호서비스, 의사 서비스, 투약 및 치료과정, 병원환경, 환자 권리보장, 전반적인 서비스 등을 평가한 내용이다. 서비스 위주의 조사이다 보니 의료의 질보다는 환자 편의성만 강조된 측면이 적지 않다. 물론 의료기관평가인증제라는 의료의 질 평가 제도가 있긴 하지만 역시 형식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각종 지표에 대한 평가를 위해 병원의 모든 의료진 또는 행정직원들이 오랜 기간 평가 준비에 매달려 본연의 진료업무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비판이다. 수련병원들도 전공의들로부터 근무환경 등을 비교해 평가받는다. 상당수 대형 병원도 진료과마다 환자 수, 진료수익을 비교해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 민간기관의 브랜드 평가 및 대표 상품, 의료기관 인증제도까지 기다리고 있다.

서울 A 종합병원 관계자는 “조사위원이 병원 직원에게 각종 규정과 정보를 질문할 때를 대비해 자신의 업무 외 항목까지 암기하는 직원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조사위원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병원 외부로 피신하는 직원 등은 흔한 광경”이라고 말했다. 실제 2018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증평가 때문에 휴직 또는 이직을 고려해 본 경험이 있다고 밝힌 이가 응답자의 54.2%에 달했다. 평가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평가받을 때는 적정 인력과 시스템을 유지하다가 평가 이후에는 원래대로 최소 인력으로 회귀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응답자의 58.7%는 평가 이후에 인력이 유지됐냐는 질문에 이전 상태로 되돌아갔다고 답했다.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정작 의료기관평가인증이 ‘의료서비스 질 향상’과 ‘환자 안전’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해 각각 49.7점, 45.3점이란 낮은 점수를 준 것도 이 같은 부작용을 대변한다.

의료계 관계자는 “적절한 평가와 그에 따른 대우는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 필요하지만, 무수히 많은 평가는 오히려 의료의 질이라는 본질을 흐리게 된다”며 “환자들도 여러 병원이 각종 평가결과를 앞다퉈 홍보하는 바람에 정작 어떤 병원이 우수한 병원인지 혼란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