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저임금 확정고시 배경

부처서 거스르기 어려운 상황
1988년부터 이의 수용 ‘0건’
“유명무실 재심의제 개선해야”

3일 고용노동부의 최저임금 확정고시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최저임금 불복종 선언 등 영세사업주의 유례 없는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용부는 ‘마이 웨이’ 입장을 견지해왔다. 고용부는 그동안 “최저임금제가 시행된 1988년부터 지난해까지 제기된 총 23건(노동계 10건·경영계 13건)의 이의 가운데 수용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는 점을 유독 강조해왔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이를 거스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용부는 이의제기의 타당성을 주로 절차적 측면에 집중해 검토해왔다. 절차상 잘못된 점이 없으니 이의제기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결론은 이미 예고된 셈이었다. 고용부 관계자는 “절차와 내용적 측면에 있어 의결 조건을 충족했느냐, 최저임금 산정 지표들의 객관성이 담보돼 있느냐 등이 주된 판단근거”라고 밝힌 바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은 사용자위원 전원과 근로자위원 일부가 불참한 가운데 이뤄졌지만, 최저임금법 및 운영규정을 모두 지켰기 때문에 절차적인 문제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고용부는 고시 확정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의 최저임금 재심의 요청에 ‘이의제기 이유 없음’으로 회신했다.

현행법상 고용부의 이의제기 검토 결과에 불복할 수 없어 경영계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는 가운데, 정부의 후속 대책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가 저소득 가구에 지급하는 근로장려금(EITC) 지급 규모를 3배 이상 늘리겠다고 발표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세사업주의 경영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일자리안정자금의 내년 지원 규모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야당과 학계는 EITC의 규모가 3배 이상 늘어난 만큼 이와 연계해 일자리안정자금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두 제도의 성격이 달라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규모를 축소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자리 안정자금과 관련 연차별 최저임금 인상 수준, 사업주 부담능력, 고용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예산안 최종 제출 때 함께 담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폭이 10.9%로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두 자릿수 인상률이 예고된 상황에서 일자리안정자금 규모를 갑자기 줄여버리면 고용주 부담이 커져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에 현재 유지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최저임금 결정 구조와 재심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 한 이 같은 상황이 매년 되풀이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와 독립된 기구에서 재심의하는 절차 등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진영·박민철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