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미군 C-17 수송기가 27일 오전 북한으로부터 송환받은 6·25전쟁 미군 유해를 싣고 경기 평택시 오산기지 비행장에 도착하자 주한미군 등 관계자들이 유해가 내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차·3차 단계적으로 보낼듯
‘동창리’ 이어 트럼프 맞춤형

종전선언·대북제재 완화 등
美양보 최대한 끌어내기 전략

송환지 평양 아닌 원산 선택
‘北의 상하이’ 조성 야심 깔려

북한이 정전협정 기념일인 27일을 그간 오랫동안 중단됐던 미군 유해 송환일로 잡고 이를 실행에 옮긴 것에는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른 종전선언 합의 및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 조치를 이끌어 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이날 예상했던 것보다 적은 수의 미군 유해를 보내는 ‘살라미’식 유해 송환을 통해 이를 향후 미·북 협상 카드로 활용할 여지를 남겼다. 나아가 유해 송환지인 강원 원산을 국제사회에 부각시키겠다는 생각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7일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에 맞춰 전쟁 당시 미군 희생자가 많았던 장진호전투 지역 주변에서 발굴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 1차분을 미군의 대형 수송기인 C-17 글로버마스터에 실려 보냈다. 수송기가 북한 원산 갈마비행장을 출발해 오산 미군기지로 돌아오는 동안 우리 영해에서부터 주한미군의 F-16 전투기 2대가 호위했다. 수송기는 오전 11시 정각 오산기지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수송기에서 유해를 실은 상자들이 차례로 운반돼 나오자 오산기지 미군 관계자와 가족 등 1000여 명이 도열해 경례를 통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장병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북한은 당초 예상했던 유해 200여 구 대신 50여 구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북측에 유해 운반용 나무상자 55개를 미리 보낸 바 있다. 이에 따라 추후 수차례에 걸쳐 미군 유해 나눠 보내기가 이뤄질 전망이다.

북한은 이와 동시에 미군 유해 송환에 앞서 전통문을 우리 측에 보내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을 오는 31일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집에서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이는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 선언의 군사적 이행과 관련,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 시범철수 협상을 통한 DMZ 평화지대화 및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평화수역화를 위한 후속조치 논의 차원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미군 유해 송환은 지난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합의에 따른 것이다. 미·북 정상회담 공동성명 제4항은 ‘북·미는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 전쟁실종자들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해 전쟁포로, 전쟁실종자들의 유해 수습을 약속한다’고 명시했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설인 동창리 미사일실험장 철거 작업을 진행한 데 이어 미군 유해 송환 카드로 미국에 꾸준히 행동 대 행동의 보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유해 송환 지역을 수도 평양이 아닌 원산으로 정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국제사회의 이목을 원산에 쏠리게 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 원산을 북한판 상하이(上海)로 키우겠다는 생각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또 이를 통해 다각화한 북한식 경제발전 전략을 이끌어 내겠다는 계획도 가진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판문점 합의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이 8월 말 이후 방북할 경우 원산을 통하게 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배가하겠다는 구상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남북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이 원산 경제발전 전략을 통해 낙후한 북한 경제를 재건하고 김 위원장을 ‘북한판 덩샤오핑(鄧小平)’으로 부각시키려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충신 기자csjung@munhwa.com·외교부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