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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역사산책:개항도시 / 최석호 지음 / 시루

우리의 근대는 식민지 경험과 더불어 시작됐다. 가부장적 봉건질서에 맞섰던 것은 내부의 부르주아가 아니라, 효율적 식민지배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외부의 지배자들이었다. 그때는 그게 얼마나 큰 희생을 강요당하게 될지 몰랐다. 가부장적 질서에 맞서 반봉건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식민지의 비주체성에 미처 눈을 돌리지 못했던 대가 말이다.

‘골목길 역사산책’ 시리즈를 내고 있는 저자가 첫 권 ‘서울 편’에 이어 내놓은 두 번째 책이다. ‘개항도시 편’으로 부제를 단 이 책은 근대문화의 세례를 듬뿍 받았던 근대 초기 개항도시의 골목 이곳저곳을 들여다보고 있다. 책이 더듬는 근대는 공간뿐만 아니다. 시간의 태엽을 뒤로 감아 가기도 하고, 근대의 공간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주목하기도 한다. 책에 소개되는 곳은 부산과 인천, 목포 개항장을 비롯해 근대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기독교가 뿌리를 내린 광주 양림동, 이념의 대립으로 촉발된 여순사건이 발생한 순천 등이다.

저자는 먼저 이들 지역에 대한 역사의 연대기를 훑은 뒤에 지역을 대표할 만한 인물들을 소개한다. 그러고 나서 지역의 골목 곳곳을 꼼꼼하고 세심하게 살핀다. 부산 개항장을 다룬 부분을 펼쳐보자. 저자는 왜구의 부산 출몰에서 시작해 6·25 전쟁과 월남 파병에 이르기까지 부산의 역사 얘기부터 두루 짚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부산에서 저자의 발걸음은 차이나타운과 왜관이 있었던 초량동, 전쟁 직후 판잣집이 즐비했던 영주동 168계단, 헌책방이 늘어선 보수동 책방골목, ‘깡통시장’으로 더 잘 알려진 부평동 시장 등으로 이어진다. 골목에서 저자는 굵직한 역사의 흔적뿐만 아니라 사소한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인다. 이를테면 시장통의 이름난 통닭집이 느끼하지 않은 닭튀김을 만드는 비결을 소개하기도 하고, 부산 밀면의 원조와 역사를 찾아 계보도를 그리기도 한다. 시장을 소개하면서 부산 어묵 업체 사이의 치열한 경쟁 구도를 일별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인천에서는 내동 교회와 내리 교회, 웨슬리 기념관 등 근대와 함께 들어온 종교 공간을 찾아가고, 화교들이 정착하면서 차린 자장면 집이며 근대건축 전시관 등을 둘러본다. 공간은 사라졌지만 기생조합인 권번 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인천의 근대 풍경 등을 그려서 보여주기도 한다. 식민지 시대의 근대에 대한 묵직한 이야기보다는,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를 무기로 독자들을 이끈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