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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경희대 교수·경제학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의료기기 규제혁신’ 발표회에서 의료기기 분야의 규제혁신을 약속했다. 의료기기 분야를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의 규제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최근에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환영할 일이다.

지난해 5월 출범한 문 정부는 이치에도 맞지 않는 ‘소득주도성장론’을 내세우며 반기업·친노동의 정책을 고집하다가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일자리 창출을 제1의 국정과제로 내걸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1년 넘게 37조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올 상반기 취업자 증가 수는 14만2000명에 불과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 악화다. 정부의 과다한 규제로 환경이 나빠져 기업의 활동이 둔해진 결과다.

기업 활동 둔화는 투자 지표를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은행 발표를 보면 지난 5월 설비투자지수가 3개월 연속 떨어지고 있다. 기업들이 제품 생산에 필요한 설비 도입을 줄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최근 OECD가 발표한 세계 각국의 경기선행지수를 보면, 32개 회원국 중 한국은 22위고, 세계 주요국 중 경기선행지수가 1년 이상 계속 떨어지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아베노믹스로 규제개혁에 성공한 일본 경제는 2016년 중반부터 계속 상승하고 있으며, 미국 경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법인세 인하, 규제 완화 등의 기업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급상승하고 있다. 급기야 한국 경제의 12배에 이르는 미국이 한국 경제 성장률보다 더 높아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한국 경제가 백척간두에 서 있음은 주력 산업들에서 드러난다. 완성차 생산량 하락으로 지난 1분기에 50개 부품업체 중 23개가 적자를 낼 정도 자동차 산업이 위기다. 조선산업은 이미 심각한 침체 상태이고, 반도체는 중국으로부터 추월당하기 직전이다. 차세대 주력 산업인 인공지능·자율주행차·핀테크 등에서는 이미 중국이 우리를 훨씬 앞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기업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기업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 기업가 정신이 활발해져 투자가 일어나고 경제가 살아나 일자리가 창출된다. 이런 이유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규제개혁 의지가 강해 조금 희망이 보인다.

그러나 규제개혁이 단지 ‘손톱 밑 가시’를 빼는 정도 가지고는 안 된다. 전반적인 산업에 걸쳐 대대적인 규제개혁을 해야 한다. 의료기기는 물론, 여타 제조업·교육·금융·디지털·바이오 등 전반적인 분야에 대해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기업 혁신 활동을 장려할 수 있도록 경직적인 노동 관련 법령과 수도권 규제도 과감히 완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보다는 실천이다. 역대 정부가 모두 규제개혁을 외쳤지만 모두 용두사미에 그쳤다. 문 대통령은 “작은 정부가 좋다는 건 잘못된 인식”이라며 규제 완화에 부정적이었다. 그런 대통령이 입장까지 바꿔가며 규제개혁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약속한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가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경제와 나라 살리자는데 너와 나가 있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이 규제개혁을 실천한다면 성공할 수 있도록 모두가 협력해야 한다. 여야 할 것 없이 국회도 협력해야 하고, 노조 역시 적극 협력해야 한다.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했다간 공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