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기환급형 1兆원 육박

- 생보사 “이제와 잘못됐다니”
약관에 ‘산출따라 지급’ 명시
소비자 너무 의식 관행 무시

- 금감원 “미지급금 지급해라”
분쟁조정위 결정 소급 적용
가입자 전부한테 주는게 마땅

최대 1조 원에 달하는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상속형)’ 미지급 사태를 둘러싸고 금융당국과 보험사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상품 약관에서 사업비를 뗀다는 것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분쟁조정위원회 결정을 바탕으로 모든 가입자에게 미지급금을 소급해 지급하라고 통보한 데 대해 보험사들은 당국의 약관심사까지 통과했는데 일괄구제 방침을 내리는 것은 보험 원리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난감해하고 있다.

16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은 목돈을 맡기면 가입 다음 달부터 매달 이자와 비슷한 성격의 연금을 나눠 받고 만기 때 낸 원금을 그대로 돌려받는 보험상품이다. 보험사는 계약자가 낸 보험료에서 사업비와 위험보험료 등을 제한 금액을 보험료적립액으로 쌓아 약정한 공시이율이나 최저보증이율을 적용한 금액을 매달 연금으로 지급한다.

이번 금감원의 일괄구제 방침의 배경에는 분쟁조정위 결정이 있다. 분쟁조정위는 지난해 11월 삼성생명과 지난 6월 한화생명에 민원을 제기한 일부 피해자를 대상으로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보험사들이 만기에 보험료 환급을 위해 다달이 연금 지급액에서 사업비 등을 뗀다는 것을 약관에 제대로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보험업계는 금감원이 즉시연금 전체에 일괄 구제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분위기다. 보험사들은 약관에 ‘보험금 산출방법서에 따라 지급한다’고 명시했고, 보험금 산출방법서에 사업비를 뗀다고 명확하게 기재돼있다고 반박했다. 상품 출시에 앞서 관련 약관과 산출방법서의 정합성을 보험개발원에서 확인받았고 금감원도 승인을 해줬는데 이제 와서 약관을 이유로 분쟁조정위의 결정을 모든 계약에 적용하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복잡한 연금계산식에 대해 설명할 의무는 없다’고 판결한 대법원의 판결도 보험사들이 반박하는 이유 중 하나다.

분쟁조정위 결정이 보험원리에 맞지 않다는 불만도 크다. 보험료에서 사업비를 떼는 것은 보험상품의 원리상 당연한데 이 금액을 만기에 보전해주라는 것은 보험사 영업행위 자체를 의미 없게 만드는 것과 같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A 보험사 관계자는 “금감원이 소비자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보험원리나 법리상 맞지 않아도 소비자에게 유리하면 그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한숨 쉬었다.

미지급금 지급 결정을 놓고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삼성생명은 오는 26일 이사회를 열어 지급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한화생명도 의견수렴을 거쳐 다음달 10일까지 지급 여부를 확정할 방침이다.

황혜진 기자 best@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