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홍도의 금강사군첩 중 옹천(1788). 44세의 김홍도가 금강산 및 관동팔경 등을 유람하며 그린 60폭 화첩 중 1폭.

중인계급까지 문화소비 확산
작품 두서너점이 집 한 채 값
그림수집에 빠져 가산탕진도

얼마 전 김환기(1913∼1974)의 붉은색 점화 ‘3-II-72 #220’(1972)이 85억 원에 낙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어려운 서민들에게는 열린 입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그림값은 천정부지다. 하지만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한국의 그림값은 정말 ‘새 발의 피’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 c.1500)는 약 5000억 원에 거래됐으니 말이다. 그래서 경제규모나 국민소득 등 여러 요소를 감안하면 한국미술품 가격은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

그런데 그림값은 원래 이렇게 비쌌던 것일까. 르네상스 시절 큰 성당의 제대 뒤에 걸리는 제법 규모가 큰 성화의 경우 당시 금화로 100피오리노에서 400피오리노 정도였다고 하니 지금 돈으로 치면 1억∼4억 원 정도다. 따라서 예나 지금이나 역시 서민들에게는 볼 수는 있지만 가질 수는 없었던 것이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화가란 워낙 신분이 낮아 예술가로 대접받기보다는 기술자 대접을 받으며 천시하는 화공이었던 탓에다 돈을 멀리해야 한다는 선비정신(?) 때문에 그림값에 관한 기록이 많지 않다. 조선 시대 양반들의 일상을 아주 세세하게 일기로 남겨 그 시대 생활상을 낱낱이 알려주는 이문건(1495∼1567)의 호를 딴 ‘묵재일기’에 의하면 성주에 귀양살이할 당시 화사 황림이라는 사람에게 그림도 주문하고 장황도 부탁하고 보통 백미 또는 소금이나 기름 등 생활필수품을 주었다고 적혀 있다.

물론 시골 관아에 속한 무명화가이기도 하겠지만 그림 또한 완상용이라기보다는 격이 낮은 장식용 또는 생활용품의 일부였다. 또한 당시 초서로 유명해 초성으로 불렸던 황기로(1521∼1575)에게 글씨를 청할 경우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거나 장기나 바둑을 두고 따로 사례하지는 않았다.

이미지 크게보기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그러나 소위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하는 영·정조 시대, 즉 18세기 이후 그림값은 엄청나게 뛴다. 상공업이 발달하고 화폐경제가 활발해지면서 시장경제가 활성화되자 중인계급이 중산층으로 성장하면서 문화의 주 소비자가 돼 나타난 현상이다. 이때부터 화가들에게 주문이 밀려들었고 그림값도 올라갔다.

하지만 그전인 겸재 정선(1676∼1759)이 살았던 시절에도 그 정도의 명성 있는 화가의 그림을 얻으려면 많은 돈을 지불해야 했다. 대수장가 사천 이병연(1671∼1751)은 겸재와 인왕산 아래 함께 살던 오랜 친구로 겸재의 그림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는 당시 겸재의 금강산첩을 은화 30냥을 받고 팔았다고 한다. 또 관아재 조영석(1686∼1761)은 정선이 1733년 처음 하향 현감으로 나간 일을 기록하며 겸재의 그림값을 3000전으로 적고 있다. 이후 18세기 후반 들어 그간 경화사족 중심의 고동서화 수집취미가 백탑파의 여항문인, 즉 중인계급에까지 퍼지면서 그림값은 급등했다. 조희룡(1789∼1866)이 쓴 ‘호산외기’에 의하면 당시 인기 있던 김홍도(1745∼1806?)의 그림을 얻기 위해서는 3000전이 필요했다고 한다. 상평통보 1냥이 10전, 3000전이면 300냥이다. 18세기 쌀 1섬(현재 약 144㎏)값이 5냥이었으니 300냥이면 쌀 60섬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이를 요즘 쌀값으로 환산하면 2000만 원 정도다.

이렇게 그림값이 폭등하자 화가 강희언(1710∼1784)의 집에 김윤겸, 최북, 김응환, 김홍도, 정수영, 김석신 등이 모여 그림을 빨리 그리고자 역할을 분담하는 소위 집체창작을 했다. 또 조선 시대 대수장가 서상수(1735∼1793)는 자신이 소장했던 서화골동을 팔아 이덕무(1741∼1793)에게 집을 사주었다고 하니 작품 두서너 점이 집 한 채 값이라는 셈이 나온다. 또 그림수집에 빠져 가산을 탕진한 상고당 김광수(1699∼1770)나 육교 이조묵(1792∼1840) 같은 이도 있으니 그림값은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하지만 부자들의 호사취미라는 비판도 있지만 문화를 보존하고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당시 돈도 안목도 있었던 그들이 차린 잔치 덕이다. 우리 후손들은 누구 덕에 떡 구경을 하며 살게 될꼬?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